하루에 100명 이상이 응급실로 찾아온다. 일부 재방문 환자를 제외하면 내게는 모두 완벽히 초면이다. 무작위로 운명이 이어진 것처럼 그들은 하필 내가 당직 근무 중인 응급실로 찾아와 각자 사연을 품고 처음 보는 내게 고통스러운 상처를 내민다. 그들을 마주하는 나 또한 다양한 사연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 한 인간이다. 그래서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도, 유독 애정을 건네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중 이름만으로 친근감이 느껴지는 환자가 도착했다.
전산망에 등록된 그의 이름은 한글이 아니라 영어였다. 유추하건대 파키스탄 사람 같았다. 당시 파키스탄에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파키스탄에는 유난히 이방인을 환대하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나는 마침 그 따스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반드시 파키스탄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던 참이었다. 순전히 사적인 동기였지만 누군가를 친절히 대할 이유는 무엇이든 좋을 것이었다. 복잡한 응급실에서 환자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그를 직접 진료실로 불렀다. 편의상 그를 ‘알리’라고 부르겠다.
대기실에 앉기도 전에 호명받은 알리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베였다고 했다. 싸매고 있는 헝겊을 잠시 떼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자리에서 즉시 봉합을 결정했다. 상처가 깊어 빨리 봉합할수록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바로 봉합 세트가 준비되었다. 일단 상처를 소독하면서 신경과 인대를 확인해 단순 봉합이 가능한 열상임을 확인했다. 나는 마취약을 주사기로 재서 손가락의 벌어진 부위에 꼼꼼히 놓았다. 알리는 별다른 표정 없이 따끔한 주삿바늘을 받았다.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 인상이었다.
“알리씨, 마취를 했습니다. 이제 안 아파요. 바로 봉합할게요.” 알리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다. 나는 겸자(가위 모양 외과수술 기구)로 봉합사를 집어 들고 물었다. “파키스탄 출신이죠? 어디 지방인가요?” 알리는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라호르에서 왔어요.” “오! 동쪽의 라호르요? 저는 저번 달에 북쪽 치트랄에 있었어요. 파키스탄 ‘형제’들이 제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몰라요.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예요. 저는 그래서 파키스탄 사람에게 꼭 친절을 베풀기로 한 당직 의사랍니다. 걱정 마세요. 잘해드릴게요.”
알리는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눈빛이었다. 타국 응급실에서 하필 자신에게 달려들어 빠른 처치를 하는 의사라니. 경황 없고 한편으로 불안했겠지만, 알고 보니 의사가 개인적으로 고국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 가시자 조금 웃는 낯이 되었다. 순간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는 다친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내게 몇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소독은 어떻게 받아야 하나요? 얼마 있다가 봉합을 푸나요? 일은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우리는 가만히 문답을 나누며 봉합을 마쳤다. 문득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그 흔한 질문들이 조금 낯설었던 것이다. 외국인, 특히 노동자는 좀처럼 이런 질문을 하는 법이 없었다. 봉합을 마치면 대부분 조용히 진료실을 나갔다. 같이 찾아온 고용주가 설명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당연히 궁금했을 것이었다. 다만 뜻을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앞으로 있을 노동과 병원비가 더 걱정될 것이었다. 알리 또한 내가 사연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그중 하나였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몇 마디 말을 나눈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에게 퇴원 처방을 냈다. 그는 다친 손 대신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형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까무잡잡한 손을 맞잡아 작별 인사를 했다. 여기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사연으로 조우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공간의 핵심은 어쩌면 이런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소하지만 때로는 사람 마음을 활짝 열어버리기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