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혁아 너무 놀라지 마라. 어느 봄날, 이모들이 우르르 찾아와 꺼낸 첫마디였다. 엄마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때 엄마는 환갑을 앞두고 있었다. 환갑 축하로 잔치 대신 결혼을 택한 거였다. 멋있었다. 아, 엄마가 나보다 먼저 가는구나. 분발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엄마 결혼식을 준비했다. 문제는 내가 결혼식을 치러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중요한 준비는 이모들이 다 했다. 나는 비용을 보태고, 소식을 알리고, 버스를 섭외하고, 엄마가 보내오는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며 보란 듯이 감탄해주는 정도였다. 살면서 엄마의 결혼식을 치르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엄마와 떨어져 산 세월이 길어서 그리 친근한 아들도 아니었다. 준비하는 모든 게 서툴렀다.

일러스트=김하경

결혼식 며칠 전부터 잠이 안 왔다. 나는 어디에 앉아있어야 할까. 어떤 표정으로 하객을 맞이해야 할까. 얼굴을 모르는 친척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 피로연 때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어떤 곡을 불러야 할까. 내 노래가 끝나더라도, 다른 분이 노래하면 옆에서 춤추고 있어야 하는 걸까. 혹시라도 내가 두 분에게 덕담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엄마 결혼식에 부모 마음으로 있어야 하는 걸까, 자식 마음으로 있어야 하는 걸까.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엄마와 관계된 엄청나게 다양한 친척과 지인을 만났다. 그분들은 도착하기까지 엄마에 대한 온갖 일화를 들려주었다. 버스에 탄 몇 시간 만에, 나는 엄마의 거의 전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모자지간으로 살아간 지 몇 십 년이 되었지만, 나는 그 몇 시간을 감당할 만큼 엄마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의 관객으로 몇 시간을 보냈다.

버스가 식장에 도착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엄마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신부대기실에 머무는 몇 분 동안 별다른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과 덕담을 그 자리에서 쏟아붓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식 직전에도 아들의 밥을 걱정하는 엄마 앞에서 내 얼굴은 계속 빨개졌다. 나는 한 번쯤 든든해보이고 싶었으나 선수를 뺏겼다. 나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 엄마와 셀카를 찍었다. 찰칵,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생소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아마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작은 소리가 몇 십 년의 어색함을 깨 주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가 행진을 시작하는 순간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식장 바깥에서 벽에 기대서 울고 있었다. 앞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세월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나이와 같아진, 여러 갈래 길로 충만한 젊은 발걸음을 보았다. 엄마는 어떤 길을 꿈꾸고 있었을까. 그러다 어떤 길을 거쳐서 나의 엄마가 되었을까. 내가 세상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엄마는 나를 계속 지켜봐 주었다. 내가 홀로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나는 내 앞의 길만 바라보느라 엄마의 길을 바라보지 못했다.

뒤늦게, 아주 뒤늦게, 나는 엄마의 행진을 바라보았다. 그 행진은 엄마의 용기였다. 그 용기에 나도 용기를 냈다. 하객들이 주는 술을 모조리 받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새로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났다. 내 작은 용기도 끝났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다시 어색해졌다. 가끔 엄마와 만날 때마다, 용기를 내기 위해 그때의 결혼식을 떠올린다. 그러면 가까스로 엄마에게 술을 따르고, 건배를 하고, 시원하게 들이켤 정도의 작은 행진이 생겨난다. 취기가 오르면 엄마는 내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내가 결혼하면, 그때는 엄마를 안을 수 있는 두 번째 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두 분은 아주 뒤늦게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행 회사에 두 분의 인적 사항을 보내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새 아버지가 엄마보다 훨씬 연하였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엄마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이제 너무 놀라지는 않는다. (이 지면을 통해 작은 용기를 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