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너무 올랐는데 지금 팔까요?” “엔비디아 더 오를 수 있을까요?”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 일을 하다 보니 ‘미국 테크 상장사’ 주식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이 가끔 있다. 필자는 그동안 펀드가 아닌 개별 업체의 주식 투자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물론 구글, 페이스북처럼 장기적으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구조적 경쟁 우위가 있다고 믿는 업체가 상장할 때, 주식을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묻어두고 금세 잊어 버린다.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는 투자(investing)와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는 거래(trading)는 ‘수익 창출’이란 목표는 같지만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투자자는 장기 보유하면서 원금의 몇 배를 건지는 대규모 수익을 기대하지만, 거래자는 단기적으로 사고팔면서 수차례에 걸쳐 원금의 몇 %에 해당하는 소규모 수익을 바란다. 투자와 거래는 확실히 다른 게임이라 양쪽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업이 장기 관점의 벤처 투자라 그런지 상장사 주식을 거래하기보다는 초기 단계 비상장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적성에 맞는다.
지난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투자를 해오면서, 펀드의 투자 전략과 맞지 않는 성장단계·사업분야·지역 때문에 투자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그렇게 인연이 끝나지만, 창업자가 너무 인상적인 경우엔 드물게 개인적으로 ‘엔젤 투자’를 하기도 한다. 엔젤 투자는 벤처 투자를 받기 어려운 아주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그야말로 창업자만 믿고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엔젤’의 어원은 브로드웨이에서 유래했다. 흥행이 어려운 연극, 뮤지컬이 문을 닫아야 하는 ‘죽음’의 상황에서 ‘천사’처럼 구해주는 후원자를 일컫는 것이다.
필자의 ‘투자심의위원회 파트너’는 다름 아닌 아내다. 아내는 지난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 애플, 이베이 등 테크 상장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특히 페이팔과 빌닷컴의 상장 시기에 핀테크 사업의 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창업자와 투자 조건을 주로 보는 필자와 달리 고객·제품 분야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투자는 두 사람 모두 찬성해야 이뤄진다. 그 조건은 첫째, 우리가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창업자인가, 둘째, 우리가 잘 아는 분야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느냐다.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니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접해본 전자 상거래, 인공지능, 블록체인, 핀테크 기업 몇 곳에 투자를 해왔다. 그중 쿠팡, 코빗, 타파스미디어, 소파이(SoFi) 등은 환상적으로 성장해 투자 회수의 기쁨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
벤처 투자 펀드에도 종종 출자했다. 이민자 출신 창업자가 미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도록 지원·투자하는 언셰클드 벤처스(Unshackled Ventures), 미국 전역의 대학을 누비며 대학생 창업자를 찾아 첫 투자를 하는 컨트래리 캐피털(Contrary Capital), 필자의 후배들이 주축이 된 스트롱 벤처스(Strong Ventures) 등 펀드의 목표에 공감하거나 창업자와 인연이 닿아 출자한 경우가 많다.
‘엔젤 투자’는 실리콘밸리를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다. 1980년대부터 성공한 창업자들은 초기 엔젤 투자에 참여해왔다. 단순 투자를 넘어 각종 성공 노하우도 함께 전수한다. 개인 단위였던 엔젤 투자는 점점 조직화되어, 미국 각지의 테크 업계 임원 출신들이 정기적으로 스타트업의 피치(pitch·사업 발표)를 듣고 엔젤 투자를 조직적으로 집행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밴드 오브 엔젤스(Band of Angels)는 1994년 설립됐다. 현재 160여명의 엔젤 투자가들이 매년 20여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그간 엔젤 투자는 테크 업계 엘리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지만, 2010년 설립된 엔젤리스트(AngelList) 덕분에 대중화됐다. 초기 엔젤 투자를 받고 싶은 업체와 투자 기회를 찾는 투자가들이 서로의 온라인 프로필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마치 온라인 데이팅 같은 서비스다.
한국에서도 이미 1~2세대 창업자들이 ‘엔젤 투자자’로 대거 나서고 있다. 본엔젤스, 프라이머, 메시업엔젤스처럼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전문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는 조직도 생겼다. 삼성 등 대기업 출신 임원들도 적극적으로 엔젤 투자 조직을 만들어 금전적 지원과 다양한 노하우,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며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엔젤 투자는 투자 수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공적인 창업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을 준다. 주식, 부동산 투자로 아무리 큰 수익을 내더라도 느낄 수 없는 기분일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