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7회 말에 접어들었을 때 맥주가 떨어졌다. 편의점에 가려면 옆 동 앞을 지나 아파트 후문으로 나가야 했다. 해가 떨어졌는데도 기온은 한낮과 다르지 않았다. 밤의 놀이터를 주름잡던 고등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희미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지고 커졌다. 트트트트에서 타타타타로, 다시 탁탁탁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옆 동 1층 필로티 어둠 속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희미한 그림자는 일정하게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줄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고 누군지 확인할 것이 아니었기에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었다. 다만 줄을 넘는 소리가 끊기지 않는 것으로 봐서 줄넘기의 숙련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맥주가 든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는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 시각에 줄넘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고 나에게도 그 시각에 맥주를 사 올 이유가 있었지만 지고 있는 야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과 열대야의 어둠 속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에 어떤 우열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 나는 모종의 열패감마저 느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술 마시면서 야구 중계를 보는 꼬락서니라니, 차라리 나가서 줄넘기를 해라. 어둠 속의 그가 그렇게 나를 꾸짖고 있었다.
이렇게 장황한 계기로 나는 줄넘기를 시작했다. 첫날엔 500개를 했다. 도대체 줄넘기를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던가. 열 개를 채 못 하고 숨이 차거나 줄이 발에 걸려 멈춰야 했다. 500개를 마쳤을 때는 신물이 넘어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걸 매일 몇 천 개씩 해야 운동이 된다고 했다. 도저히 다음 날도 줄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둘째 날엔 1000개를 했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100개씩 늘려 갔다. 차츰 힘이 덜 들었고 줄이 발에 걸려 멈추는 빈도도 줄었다. 생각해 보면 줄넘기는 나와 매우 잘 어울리는 운동이었다. 그간 내가 꾸준히 해온 운동은 달리기 등산 자전거 같은 것이었다.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자전거를 제외하면 딱히 장비가 필요 없었다. 별로 돈이 들지도 않았다. 줄넘기는 줄넘기와 팔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와 아주 잘 맞기도 했다. 혼자 줄을 돌리며 제자리를 뛰는 것이 운동의 전부였다. 30분 줄넘기에 300㎉가 소모된다고 하니 달리기보다도 효율 높은 유산소 운동이며 온몸 근육을 쓰는 전신운동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도 줄넘기의 큰 장점이었다. 다만 무릎 관절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된 나에게는 약간 제약이 있었는데, 푹신한 우레탄이 깔려있는 아파트 놀이터가 최적의 줄넘기 장소였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아이들 것이므로 나는 아이들이 없는 새벽이나 저녁에 줄넘기를 했다. 가끔은 해가 지고 나서도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놀이터 구석으로 가야 했다. 어린아이들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가까이 와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어떤 아이는 집에서 줄넘기를 가져와 내 옆에서 한 번에 줄을 두 바퀴씩 돌리는 쌩쌩이를 했다. 나에게 쌩쌩이를 따라 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아이들은 제풀에 지쳐 그네 쪽으로 가서 놀았다.
500개로 시작한 줄넘기는 매일 3000개로 늘었다. 3000개 가까워지면 달리기에서 말하는 일종의 운동 환각 같은 것이 오는데, 내가 줄을 넘는 건지 줄이 나를 도는 건지 헷갈리면서 몽롱해진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온몸의 근육이 극도로 이완돼 무한 동력 상태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나에게 지구만 한 줄넘기를 주면 지구라도 넘어주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줄넘기는 끝난다. 환각은 찬물로 샤워하는 순간 바로 깨진다.
생각했던 것만큼 다이어트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줄넘기의 정직한 매력을 발견했다. 줄을 360도 돌려 원을 그려야만 줄넘기 한 번이 완성됐고 그 가상의 구체(球體)가 끊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매번 발을 들어 올려 뛰어야 했다. 줄넘기는 삽으로 땅을 파 도랑을 만들거나 벽돌을 쌓아 벽을 세우는 것처럼 단순하고 꾸준한 일이었다. 뛴 만큼 땀을 흘리고 끝내 목표에 다다르는 일은 얼마나 귀중한가. 나는 몸을 써야 비로소 머리가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
올여름 나는 매일 삼천 배(拜) 하듯 줄넘기 삼천 개를 했다. 다들 더 나쁜 사람이 되려고 앞다투어 질주하는 시대에,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