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코로나 관련 제한이 대부분 풀려 정상 생활에 가까워졌다. 아직까지도 실내에서나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제는 대면 미팅이나 식사가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셧다운이 없었기 때문에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미국에서는 1년여 만에 비즈니스 목적으로 직접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커다란 변화이다. 물론 대부분의 미팅은 여전히 화상회의로 진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진출, 지금이 기회

언젠가부터 화상회의를 시작할 때 빠지지 않는 인사가 생겼다. 바로 “지금 어디서 접속 중이시죠?”다. 필자가 지난 수개월간 화상회의를 한 지인 중에는 실리콘밸리에 살다가 타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이 상당수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공기 맑고 사람 적은 하와이나 멕시코 해변에서 장기 임대한 에어비앤비(임대형 개인 주택)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족을 데리고 실리콘밸리를 완전히 떠나 텍사스주 오스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워싱턴주 시애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테네시주 내슈빌 등으로 이주했다.

실리콘밸리는 테크 사업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날씨 역시 좋아 미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꼽히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런데 왜 많은 이가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걸까? 필자가 들은 가장 큰 이유는 캘리포니아주의 무거운 세금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의 평균 세율은 미국 전체에서 10위권 정도다. 단, 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최고 세율은 무려 13.3%로 압도적 1위다. 2위 하와이와 2% 이상 차이가 난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고소득자는 연방 세율 37%에 주(州) 세율 13.3%를 합쳐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상장 혹은 인수를 앞두고 있는 스타트업이나 큰 투자 회수를 앞두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선 이런 주 세율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 중 실리콘밸리를 떠난 이 대부분은 창업자이거나 스타트업, 투자 업계 출신이다.

물론 이런 세금 부담은 전부터 있었던 얘기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좀 다르다.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 비즈니스가 일상화하면서 캘리포니아주의 비싼 세금과 집값, 물가를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비즈니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주 세금 부과 기준은 체류 기간 ’45일'이다. 그 이내로만 캘리포니아주에 머물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중요한 대면 미팅이 있으면 출장을 오면 된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은 ‘Remote First(원격 우선)’ 근무 방식을 도입했다. 업종·역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 대면 회의를 제외하고는 원격 근무가 일상화했다. 사내 및 팀 내 커뮤니케이션은 ‘슬랙(Slack)’ 같은 메신저나 ‘줌(Zoom)’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hybrid·복합) 근무를 위해, 대표이사나 임원들도 일부러 사무실에 나오는 날을 스스로 제한한다. 단, 명확한 의사 전달 혹은 상호 의견 교환이 필요할 때, 한 달에 1~2회 정도는 함께 대면하면서 전체 회의나 팀 회의를 진행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될까. 필자가 24년간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지켜본 결과,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 역시 늘 많았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경제 위기 때도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이 실리콘밸리를 떠났다. 당시 집값은 안정화되고 교통 체증 역시 사라졌다. 불과 1~2년 만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창업 의지를 갖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진출을 계획하는 한국의 대기업, 스타트업, 창업자에겐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일 수 있다. 코로나 여파로 실리콘밸리의 경제 활동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인 지금 자리를 잡는 것이다. 한국 출신 창업자들이 세운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도 점차 늘어 차세대 창업자를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실리콘밸리에 한국계 투자 펀드도 많이 늘었고, 이곳의 벤처 투자 업계에도 정세주 대표의 눔(Noom)이나 김동신 대표의 센드버드(Sendbird) 같은 성공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 나올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적극적으로 진출을 고려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올 연말이 되면 실리콘밸리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꽉 찰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