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주가 활짝 열렸다. 지난 2일부터 이곳에선 이제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백신이 넘쳐나는 미국인데도 지난 대선 때 보수 후보를 택했던 오하이오주엔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아, 주지사가 주관하는 ‘백신 접종 복권’까지 생겼다. 접종을 마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데, 당첨자 5명에게 무려 100만달러(약 12억원)가 주어진다. 추가로 주립대학 기숙사 포함, 전액 장학금 당첨자도 뽑는다. 일단은 시크한 척 참고 있지만, 나도 막상 2차 접종까지 마치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코로나로부터 자유를 얻은 첫 주말, 클리블랜드는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공원에서 바비큐를 즐기려는 차들이 몰려나와 이 작은 도시에 교통체증이 생기고, 술집과 레스토랑은 어디 할 것 없이 만석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폭포수처럼 집에서 뛰쳐나오는 반면, 65세 이상 시민들은 백신을 맞고도 변이 바이러스 공포 때문에 아직 공연장에 발걸음 하기를 주저한다. 관련 법령도 아직 혼란스러워, 작은 음악제를 운영하는 나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듯한 연방 이민법령들 때문에 매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중이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의 작은 연주회를 보게 되었다. 혼돈 속 평정심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장소는 피아노를 판매하기 위해 작은 하우스 콘서트를 가끔 여는 악기사였다. 외진 곳 주차장에는 차 몇 대뿐, 건물 안에는 공연장이라기엔 조금 민망한 작은 공간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도 쭈뼛쭈뼛 자리를 찾아 앉았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와 힌데미트의 비올라 소나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50분 남짓 짧은 연주를 들으러 모였지만 사람들 분위기는 따뜻했다. 대부분 서로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나만 혼자 온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어쩐지 안도했다. 아무런 관계도 책임도 없는 곳, 휴대폰을 끄고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은 채 음악을 즐기기엔 최상의 조건이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된 슈베르트의 작품은 이제 비올라나 첼로로 연주되곤 한다. 기타를 활로 연주하는 듯한 아르페지오네의 음색에 맞게 작곡된, 나른하고 느슨하면서도 애수 짙은 첫 멜로디를 듣는 순간 나는 탄성을 지를 뻔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웃고 떠들던 친구의 익숙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음악의 아름다움이 귀로 마음으로 ‘훅~’ 들어와 버린 것이다. 화려함 대신 음악적 진실성과 청렴함을 선택한 친구의 평소 마음가짐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꾸밈 없는 음악을 직접 들어본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이런 음악에는 청량하고 따스한 힘이 있다. 소박한 할머니의 된장찌개, 어린아이의 환한 미소, 봄날 느껴지는 산들바람처럼 말이다.
줄리아드, 커티스,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 같은 유명 학교가 있는 대도시 대신 중소도시 클리블랜드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우리는 이런 작은 공연을 자주 경험했다. 동네 소모임인 듯 자유로운 분위기 속, 음악 외에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인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일은 특별하다. 우리는 자유롭게 음악을 탐구했고 스스럼없이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속에서 아마도, 음악은 모두의 것이며 나눌 때 힘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가끔은 내 모습이 다른 어떤 이보다 화려하지 않아 속상할 때가 있다. 더 큰 연주를 하고 싶고,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더 유명한 학교에 갔으면, 더 유명한 선생님과 공부를 했으면, 더 예뻤으면. 그렇게 매일 흔들리는 내 마음에, 친구가 전해준 진실되고 깊은 음악의 힘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이 음악이 내 마음 깊이 뿌리 내리고 버거운 어려움도 버틸 힘을 줄 것이다. 나의 사랑 모차르트와 관련해 전해지듯, 음악은 ‘사랑, 사랑, 그저 사랑’인가 보다. 진실된 사랑과 음악을 사람들 영혼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 그런 다짐을 다시 하게 해준 멋진 친구에게 내일은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내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