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중환 구역에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모습을 목격한 이웃이 신고했다. 신고자는 그녀가 워낙에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했다. 환자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고 머리 앞쪽에 상처가 있었다. 넘어질 때 하중이 머리 앞쪽으로 쏠려 다친 것 같았다. 그 밖에 발목이 조금 부어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손상은 없었다. 유심히 보자 환자의 손과 발과 얼굴 등에 잔 상처가 많았고 전반적인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적장애가 심해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상태였을 것 같았다. 나는 수액과 전반적인 검사를 지시했다.
보호자는 곧 도착했다. 체격이 왜소한 할머니였다. 일단 검사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설명했다. CT 검사상 이마 앞쪽에서 소량의 뇌출혈이 보였다. 발목의 손상은 가벼운 골절이었다. 다행히 그 외에 큰 이상은 없었다. 뇌출혈 양이 많지 않아 중환자실 관찰만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였다. 발목 또한 수술하지 않고 보존적 치료로 충분할 것 같았다. 나는 전공의에게 부상 정도를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환자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도록 지시했다.
한참 다른 환자를 보고 있으니 전공의가 나를 찾았다. 뇌출혈이라는 말을 들은 보호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치료도 하지 않고 사망하게 할 수 있냐고 묻고 있다고 했다. 순간 조금 성이 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불치병에 걸렸거나 노쇠해서 사망이 예견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환자는 아직 젊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정도의 손상을 입었다. 응급실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적용될 사람이 아니었다.
순간 법이 보호자의 편의를 위해 악용되는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환자는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보호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생명을 그렇게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설명해야 했다. 나는 보호자를 불렀다. 할머니는 작은 키에 아주 마른 몸이었다. 나는 진료실 책상에 팔을 괴고 조금 따지듯이 물었다.
“보호자분. 안 돼요. 따님의 신체는 건강하다고요. 심하게 다치지 않아서 조금만 치료하면 회복될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괜찮아진다는 거죠?”
“네.”
“선생님. 우리 아이는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할머니는 사십대의 환자를 아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돌봐왔어요. 남편은 떠나고 혼자서 아이를 키웠어요. 젊었을 때는 아이를 그럭저럭 돌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나는 여든이 다 되어서 기력이 없는데 아이는 여전히 힘이 세요. 지금 내 몸으로는 아이가 전혀 감당이 안 돼요. 게다가 몇 달 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중이에요. 병원만 오가도 기운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점점 아이가 다쳐요. 오늘도 잠들어 있는 사이에 아이가 계단에서 굴렀어요.”
책상 위를 괴고 있던 손이 거두어졌다. 어느새 내 손은 배꼽 아래에 정돈되어 있었다.
“저는 곧 죽을 건데 우리 아이가 험한 세상에 혼자 남으면 어떻게 될지 뻔해요. 아이가 먼저 떠나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서 편히 죽을 수가 없어요. 이 정도면 우리는 오래 산 것 같아요. 아이가 다쳤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을 때, 이번 기회에 아이를 보내놓고 저도 곧 죽으려고 마음먹고 왔어요. 그런데 안 되는 거죠?”
“…네. 안 됩니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이 어두워져 돌아섰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평생 한 생명을 돌봐온 사람에게 생명의 귀함에 대해 훈계하려고 한 것이었다. 환자는 치료받기 위해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우리는 해당 사항이 없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지 않았다. 보호자는 모든 것을 납득했다. 치료는 대략 두 주쯤 걸릴 예정이었다. 치료를 마치면 환자는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면 이제 환자는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나를 포함한 이 병원의 누구도 관심이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