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일수록, 멍 때리는 시간이 매일 꼭 필요해요.” 작년 여름에 만난 어떤 스타트업 대표의 말이다. 거래액 수천억원 규모로 급성장 중인 회사를 이끄는 대표라면 얼마나 바쁠는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얻은 최고의 조언으로 멍 때리는 시간 갖기를 꼽았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조직의 구심력인 대표가 사무실에서 이런 시간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매일 아침 카페로 출근하는 것. 휴대폰을 끄고 종이와 펜만 들고 앉아서 한두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깊은 생각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 하지만 멍 때리는 아침을 가지는 대표의 여유는 이 회사의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만난 여러 스타트업 대표들의 공통적인 취미 중 하나가 주말 캠핑이었다. 왜 캠핑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불멍’, 즉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무념무상으로 있는 시간이 좋다는 답변을 많이 들었다. 하루하루 회사의 생존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대표는 눈 뜨고 있는 시간 전체가 일하는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머리의 전원을 잠시 꺼두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뇌가 외부 자극을 흡수하고(Input), 정보와 지식을 소화하고(Processing), 그 결과로 판단을 내리는(Output) 세 가지 과정을 반복한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건 어디일까. 개인별로 편차가 크겠지만, 직관적으로는 첫 단계에 가장 많이 노출이 될 것 같다. 멍 때리는 시간의 가치는, 잠시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소화하고 판단하는 데만 나의 뇌를 오롯이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마치 탁월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유려하게 조율하듯, 나 또한 스스로 뇌를 조율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환경에서 나의 뇌가 소화와 판단에 최적화된 활동을 하게 될까? 아시아 최대 광고 회사인 덴쓰에서 여성 최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오카무라 마사코는 ‘커리어 대작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저에게 딱 맞는 활동은 바로 수영. 머리를 비우고 그저 수영에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무언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욕실 욕조에서 멍 때리고 있을 때도 아이디어가 찾아오곤 합니다. 아무래도 제 뇌는 물과 궁합이 좋은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뇌가 쾌적하게 느끼는, 즉 α파가 나오는 공간이나 시간을 잘 파악한다면 괴로움 없이(적어도 덜 괴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최상의 컨디션이 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파악하는 것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잘 아는 메타 인지 능력은 현대인에게 점점 더 필수적인 역량이 되고 있다. 그래서 최고의 운동선수들이 가장 잘 맞는 루틴을 평소 몸에 익혀두고 시합 직전에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처럼,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카페에 가든, 캠핑을 하든, 수영을 하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나의 경우 최근에 ‘골프, 멘털 게임의 예술'이라는 책에서 도움을 얻었다. 심리학 박사이자 PGA 투어 코치인 조셉 패런트가 썼는데 첫 장은 이렇다. “챔피언과 패배자가 갈리는 것은 바로 멘털 게임에서다. 챔피언이 보여주는 정신력은 바로 자신감에서 나온다. 무조건적인 자신감을 지니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순간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책을 읽고,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을 들어서는 순간 나의 오늘 시합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