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소설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자신이 살던 소행성을 떠나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가 어느 상인을 만난 장면이었다. 상인은 갈증을 가라앉혀 주는 알약을 팔고 있었다. 그런 물건을 무엇 하러 파느냐는 어린 왕자의 물음에 상인은 답했다. 이 알약을 먹으면 목이 마르지 않아서 시간을 아낄 수 있는데 전문가의 계산에 따르면 일주일에 무려 53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 동안 무얼 하느냐고 어린 왕자가 이어 물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상인의 대답에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53분이 주어진다면 우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겠노라고. “어이구,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숨 더 자겠다. 세상 물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어린 놈의 왕자 같으니라고.” 열과 성을 다한 일을 퇴짜 맞는 바람에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더욱더 바빠질 판국에 놓인 나의 입에서 아니꼬운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일하다가 뺨 맞고 어린 왕자에게 눈 흘긴 것은 비단 몸이 피곤해서 뿐만은 아니었다. 거절당했다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예민함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은 정중한 말투로 합당한 요구를 하며 당신을 해칠 마음이 없다는 웃는 눈의 이모티콘까지 섞어 퇴짜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그 안에 담긴 부정적인 메시지가 나를 내내 괴롭혔다. ‘아니,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도대체 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처음에는 퇴짜 놓은 사람을 원망하다가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 아니,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들켜버리고야 말다니! 이래 가지고 어디 먹고살 수 있겠어?’ 다음에는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자학했다. 원망과 자학을 오천 번쯤 반복하며 생존을 고민하는 찰나에 우물을 향해 걸어가네 어쩌네 하는 동화 속 이야기를 읽었으니 공연히 심통이 날 수밖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원망, 자학, 원망, 자학, 원망, 자학, 자학, 자학, 자학, 자학. 내가 너무 밉고 싫어 눈물이 다 났다.
몸은 고단해 죽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던 그날 밤, 인터넷 검색 창에 ‘거절’ ‘상처’ ‘자괴감’ 따위의 단어를 집어넣다가 한 여자와 노스님이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스님, 저는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면 떨쳐내기가 어려워 무척 괴롭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울먹이는 여자의 얼굴 위로 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답하셨다. 당신은 스스로를 열등하다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당신은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 분한 마음을 상처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잘났다는 생각을 버려라. 길가에 핀 풀 한 포기와 내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야 한다. 불 꺼진 방에 누워 주문을 외듯 거듭 읊조려 보았다. 나는 잘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길가에 핀 풀 한 포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느라 바빴던 몸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순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간밤의 주문이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대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 보기로. 나만이 옳다는 독선을 버리고 타인의 의견을 편견 없이 수용해 보기로. 새사람이 되기 위한 나름대로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가슴앓이를 털어놓았다. 수화기 너머의 친구는 나의 고해성사를 진지하게 들어 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남은 임무는 퇴짜 맞았던 일을 다시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연거푸 한숨만 내쉬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답답하면 53분 동안 걷다가 들어와 봐. 나가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머리도 식히면 좋잖아.” 나는 친구의 의견을 대차게 묵살했다. “장난하냐?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어!” 그럼 그렇지, 하는 친구의 웃음소리에 나 역시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내가 또. 개과천선 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