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병으로 두 다리와 한 손을 잃은 노숙인 형제의 이야기를 지난 글에서 나누었다. 그 형제는 치아를 10여 개 뽑아야 하고, 틀니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몇 달간의 치료를 위하여 서울로 숙소를 옮겼다. 게다가 평창 공동체엔 머물 공간도 재정도 부족해 계속 머물 형편도 못 되었다. 그래서 수도자반 형제들과 통나무 집을 직접 짓기로 했다. 엔진톱 사용법을 익히며, 통나무를 사다가 한 개 두 개 만들어가고 있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치과 치료는 평소 알고 지낸 치과원장이신 두 장로님께서 무상으로 해 주겠다고 하였다. 지금은 형제가 머무는 고시원 가까운 곳에 있는 치과에서 치료하고 있다. 원장님과 간호사들이 여느 환자 이상으로 늘 따뜻하게 맞이하고 도와 주신다. 형제와 함께 몇 차례 병원을 오가는데, 차 중에서 형제가 한마디 한다. “목사님, 되게 고맙네요.” “그러면 고맙다고 인사해야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게 묻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꽃다발이라도 전해 드리든지. 그러고 보니 몇 백만원 번 셈이네요… 하하하.” 얼마 후 차에서 내리기 전, “목사님, 그거 있잖아요. 살아있는 것으로!” 화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난을 하나 선물해야겠어요! 목사님, 교회 사무실에서 먼저 주문해 주세요. 제가 갚을 게요” 감사 인사를 하니, 원장님은 뜻밖의 일인지라 너무나 기뻐하였다. 치과에 갈 때마다 제일 좋은 자리에서 난이 웃고 있다.

나는 형제를 고시원 앞에 내려 주었다. 그러고 형제의 식사가 걱정되어 인근 음식점이 어디 있나 찾았다. 오래된 설렁탕 집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녁식사 하기엔 이른 시간인지라, 주인 할머니는 성경을 읽고 있었다. “할머니, 성경 읽는데 죄송하네요. 설렁탕 특으로 2인분 주세요. 싸주실 수 있나요?” “예, 그런데 먼 곳으로 가지고 가나요?” “아니오. 요 옆 고시원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가 목사처럼 보였는지, 열심히 준비를 하면서, 54년 동안 교회 다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단에 빠졌던 이야기부터, 거기서 벗어난 은혜받은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그러고는 “우리 아이들이랑 먹으려고 담근 것인데, 이거 드릴 테니 가져가라”고 한다. 며칠은 충분히 먹을 총각무를 싸주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또 이 반찬 저 반찬을 챙겨주신다. 그 후에 갔어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나는 교회와 사회개혁에 주로 관심을 갖고 지냈다. 그 당시 나는 항상 비판과 불만이 가득 찬 이들 속에서 살았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도, 내가 찾아가는 이들도 대다수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노숙인 형제들을 돌보기 시작한 이후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 내 곁에는 말없이, 이름도 밝히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이들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이들이 지어가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세상 밑에, 도도히 흐르는 오염되지 않은 커다란 사랑의 수맥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본다.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이들이 지어가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세상 밑에, 도도히 흐르는 오염되지 않은 커다란 사랑의 수맥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본다. /일러스트

산마루교회 주보엔 천사들의 소식란이 있다. 대다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제공한 마스크, 속옷, 과자, 쌀 등등을 알리는 것이다. 천사 중엔 쌀을 20㎏씩 놓고 가는 분이 있었다. 주일 오후, 나는 마스크를 쓴 한 여성분과 마주쳤다. 반가운 눈빛으로 인사하고는, 낯을 피한다. 쌀을 놓고 가는 길이었다. 내가 말을 걸자, “목사님 몰래 다녀가려고 했는데요, 오늘은 그만….”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제가 뺐었군요!” 함께 웃었다. 차 한잔하고 가시라 하니, 겸연쩍어하며 자리에 앉는다. “어떻게 우리 교회를 아시고 도둑처럼 다녀가시나요? 하하하.” “너무나 감사해서 그러지요. 하나님이 감사하고, 우리나라가 감사해요!” 우리나라가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그분은 한때 급성장하는 대형 학원을 운영하였다. “욕심이 생겨 융자를 받아 학원을 무리하게 계속 확장했어요.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이때 정부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학원들을 규제하느라 세무조사가 들어갔던 것이다. 한 달 넘게 진행되니, 학원 업무가 중단되고, 은행 대출이 중단되자, 부도로 문을 닫게 되었다. 가정도 학원도 모두 파산하고 남편과도 헤어지고 말았다. “월세 100만원에 20만원짜리 지하에서 살았어요. 아들 셋만 데리고! 한동안 자살 충동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믿음으로 평안을 되찾았어요. 가정도 회복돼 가고!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라고 쌀을 제공해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 쌀을 아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목사님, 제게 소원이 있어요. 기도 부탁합니다. 저는 기도하는 자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 외에는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려고 해요. 이미 시작했어요. 그래서 쌀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