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불광역(서울 은평구) 인근 대로변에서 ‘양천리’라는 가로형 자연석 표지판을 만났다. 의주(현재 신의주)와 부산 양쪽에서 모두 1000리(兩千里)가 되는 중간 지점이다. 물론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하던 시절의 흔적을 2005년에 되살린 것이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되면서 중간 지점인 추풍령 휴게소에는 ‘서울 부산 중심점’ 이란 세로형 표지석을 만들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개통 당시 만든 표석이 눈에 띄지 않는 잡초 무성한 곳에 있는지라 준공 40년 후 2010년 현재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장거리를 이동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라 하겠다.
사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 반(半)이 주는 심리적 안도감은 결코 작지 않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면서 다시 남은 여정을 헤아리는 까닭이다. 그리고 중간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가운데 장소가 아니라 시발점과 종착지라는 양쪽을 동시에 아우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간 표지석은 단순히 중간점을 기록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쨌거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이다. ‘땅끝마을’은 한반도 끝이라는 이유로 유명하다. 광화문 도로 원표(元標)를 기준으로 동쪽 끝은 이름 그대로 정동진이다.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이후 더욱 인기를 끌면서 국민 관광지로 부각되었다. 따라 하기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인천은 정서진을 준비하고 전남 장흥에는 정남진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중앙은 어디일까? 강원도 양구군 남면은 종전 이름 대신 ‘국토정중앙면’으로 개명을 추진하면서 반도의 한가운데라는 배꼽 마을을 자처했다. 그러자 충북 충주에서 발끈했다. 이미 국토 중앙을 상징하는 7층 석탑인 중앙탑이 신라 때부터 전해오기 때문이다. 하긴 역사적 장소성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심에 원표를 세우기도 하지만 원표를 세우면서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 일주문 앞에도 도로 원표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높이 3m 넓이 20cm쯤 되는 직사각형 돌기둥이다. 이 자리를 기점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합천·야로·김천·성주·진주·거창·고령·대구 등 인근 지역을 망라하여 당시의 거리 표기법인 ○리(里) ○정(町)을 사용한 근대 기록물이다. 광화문 네거리도 아닌 사찰 일주문 앞에 무슨 까닭으로 원표를 세웠을까? 차가 귀하던 시절 인근 지역에서 오가는 수많은 순례객을 위한 이정표라는 설명은 너무 피상적이다. 짐작하건대 영남 땅의 중심점이라는 ‘배꼽(丹田) 자리'를 표시한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동서남북은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설정하기 마련이다. 대구의 남산인 비슬산은 아예 ‘앞산’이라고 부른다. 경부고속도로 준공 이후 굽은 길에 대한 직선화 작업이 계속되면서 실질적 중간점도 약간 이동했다. 그리고 국토의 정중앙 역시 신라 땅의 넓이와 조선의 국토 면적이 달랐기 때문에 시대마다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동서남북과 그 중심은 나눌 때는 분명히 나눠야겠지만 때로는 나누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772~846)은 동서남북이란 늘 상대적인 것이며 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므로 지나치게 시각을 고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동간수류서윤수(東澗水流西潤水) 남산운기북산우(南山雲起北山雨)’.
동쪽 계곡물이 흐르니 서쪽 계곡의 물이 불어나고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는 비가 내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