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회사용 부캐(부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우리 회사에서 만든 이 테스트에 일주일 만에 10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은 어떠한지 묻는 20개 질문에 답하고 나면, 나의 일하는 자아는 어떤 유형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MBTI(성격 유형 검사)다. 답변 결과는 재기 발랄한 백종원, 뭘 해도 성공했을 김연아, 호기심 많은 레이디 가가, 엄격한 헤르미온느, 합리적인 마크 저커버그, 네고하는 황광희 등 16개 캐릭터로 풀이되고, 나와 잘 어울리는 직업, 그리고 나와 궁합이 잘 맞거나 맞지 않는 캐릭터들도 같이 알려준다.

예를 들어, 내 결과는 대담한 스티브 잡스였다. ‘이상적인 목표 세우는 게 왜 어렵지? 세상 제일 쉽지 않은가?’ ‘권력 활용이 아주 굿이에요~’ ‘당근은 주지 않지만 채찍질은 내 전공’과 같은 특징이 있고, 만족하는 직업으로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혁신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내는 임원, 사업가, 투자자 등이 나온다. 소셜미디어에는 나의 회사용 부캐 결과를 인증하는 후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ins.keep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유저가 이렇게 적었다. “부캐의 개념은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제작진의 기획과 유재석의 활약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한 사람은 일관된 모습만 지니고 있다는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여러 영역 안에서 개인의 성향과 능력은 다르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아주 좋은 사회적 흐름이라 생각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그는 개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나,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대인 관계에 따라 드러나는 다양한 자아가 모두 나 자신이며, 한 명의 인간이란 여러 자아의 합이다. 따라서 누구를 어떻게 사귀느냐에 따라 내 안의 자아 구성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만나는 사람, 읽는 책, 사는 장소가 달라졌기에. 그래서 나라는 개인을 여러 자아의 동시 진행 프로젝트처럼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12년에 출간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개념이라 놀랐다. 8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여러 자아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직장에서의 자아, 퇴근 후 자아, 주말 시간을 보내는 자아, 온라인에서의 자아와 오프라인에서의 자아도 다르다. 온라인에서는 아예 여러 계정을 각각 다른 자아를 가지고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트렌드노트 2021’에서는 차별화의 욕구가 높은 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자아를 표현하는 방식도 바꾸었다고 나온다. 소셜미디어 분석 결과, 2019년 1분기부터 MBTI 언급량이 혈액형을 추월했고 2020년 2분기엔 7배 이상 벌어졌다. 혈액형은 네 유형밖에 없어 나를 표현하기엔 뭉툭하다. 하지만 MBTI는 사람을 16가지로 나눈다. 나의 자아를 표현하는 언어가 더 정교해질수록 밀레니얼 세대의 환영을 받는다. 2020년에 각종 MBTI 테스트가 폭발적으로 등장한 것은 놀랍지 않다.

“당신의 회사용 부캐는 무엇인가요?” 테스트는 우리 팀 1990년대생 세 명이 만들었다. 내가 그렇듯, 아마 이 셋도 회사용 부캐와 회사 밖 자아는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테스트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