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인 이 문장은 간단치 않다. 금언인 양 간결하면서도 수수께끼인 양 아리송하다. 무슨 뜻일까? 첫 문장 다음에는 바람피운 남편으로 인해 풍비박산 난 가정의 풍경이 이어진다. 아내는 남편과 한집에서 살 수 없다 선언하고, 하인들도 저마다 흩어지고, 아이들은 방치되어 제멋대로 뛰어다닌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다.

위기에 처한 이 가족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것이 여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다. 고위직 관료 남편과 아홉 살짜리 아들을 둔, 모든 것이 완벽한 그녀는 오빠 집안을 봉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깨뜨리고 만다. 가벼운 쾌락을 좇는 바람둥이는 앞으로도 계속 그 ‘행복’을 이어갈 터, 단 한 번 진짜 행복(진짜 사랑)에 충실했던 여인이 ‘외도’란 죄명으로 불행해지는 건 일견 모순이다.

그 모순을 잘 알기에 톨스토이는 지극한 연민의 손길로 여주인공을 다룬다. 플롯상 그녀를 죽게 만들면서 속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한 듯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그녀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안나를 위시한 소설 속 인물 대부분이 죄를 짓는다. 누구는 배반하고,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도덕적 우위를 가장해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 다들 ‘내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잘못하지 않은 나는 불행해질 수 없고, 상대가 불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각자 입장에 들어가 보면 실제로 죄는 없을 수도 있다.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죄가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이해받고 용서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톨스토이의 눈은 하늘 높은 곳에 있다. 아이들의 뒤엉킨 싸움을 바라보는 엄마처럼, 인간사 아수라장을 내려다보는 조물주처럼,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들의 아우성에 한숨짓는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는 말은 한숨 속에 내뱉은 그의 관전평이자 최종 판결문이다.

골몰하여 잔뜩 찌푸린 톨스토이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저 높은 창공에 뜬 매의 눈으로 행복한 가정들과 불행한 가정들의 양편을 조감한다. 한쪽은 평화롭고, 다른 쪽은 전쟁터다. 한쪽은 이유를 막론하고, 즉 이유를 초월해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다른 쪽은 각자 이유를 들이대며 갈라져 시끄럽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조감도의 포인트는 이것이다.

‘모두 닮았다’는 표현은 ‘하나 됨’의 이 유기성과 맞닿아 있다. 행복한 가정은 하나로 뭉쳤고, 그 점에서 서로 닮았고, 그래서 세상 모든 행복한 가정은 근본적으로 하나같다. 그런 논리로 보면, 행복한 세상은 하나의 큰 가족이며, 분열되지 않은 온전한 자아는 타인과, 또 세상과 하나를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마음 한몸을 이룬 관계는 행복하다.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구체적 조건에 있지 않다. 행복은 무아지경에 다다른 일체성의 상태를 지향할 뿐이다. 이상적인 그 경지를 어떻게 실현하고 지탱해 나갈지의 행동 강령(가령 노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비판하지 말라 등의 복음서 가르침)은 부차적 각론에 해당한다. 각론은 그때그때 바뀌어도 핵심 원리는 변치 않는다.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한 편의 기나긴 소설을 써야만 했다. 톨스토이는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박물관에 가면 그의 가족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안내자는 그 그림에서 부부의 시선이 각각 다른 쪽을 향해 있음에 주목하라고 덧붙인다. 그만큼 불화했다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는 물론 종교, 교육, 법률, 정치와 같은 온갖 사회제도와도 톨스토이는 불화했다. 그리고 마치 삶의 불행감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글로는 통합과 연대의 길을 그다지도 강조했다. 종국에는 예술조차도 사람들을 결합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부정했다. 그가 거부한 작품 중에는 자신의 ‘안나 카레니나’도 포함된다. 그런 톨스토이를 그의 아내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명료하고 단순한 행복의 원리가 실제 차원에서는 복잡하고 어렵다. 뻔한 얘기에 불과한 이 사실이 내게는 항상 새삼스럽고, 요즘같이 시끄러운 시대, 불행한 사회를 살아내야 할 때 특히 그렇다. 분열 없이 화목한 자아, 가정, 사회, 국가는 조용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혼란스럽다. 각자 죄를 지으며 죄 없다고, 복수하겠다고 야단들이다. 참으로 제각각 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