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1일 대국민 연설엔 종전(終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고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있었다.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청사진을 보여줬단 것이다. 이란을 향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경고하는 동시에, 미 항공우주국(NASA) 로켓 아르테미스 2호의 발사 성공을 알리면서 ‘우주시대의 영광’을 선포했다. 이란과의 전쟁이나 달 탐사가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석기시대로 회귀하거나 우주시대로 도약하는 국가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지구는 하나의 행성이어도, 그 안의 국가들은 저마다 수천 년의 시간 차를 두고 살아가는 ‘시대의 분절’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6·25전쟁 직후의 한국은 석기시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전쟁 전 경험했던 농경시대의 근면성을 무기 삼아 산업시대에 진입했다.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심지어 무대 위에서 반복된 훈련과 노동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 K팝의 ‘칼군무’는 그 압축 성장의 문화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제목이 ‘피 땀 눈물’일까.
이제 근면성만 갖고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기 어렵다. 상상력과 기술 주권이 지배하는 우주 시대로 가기 위해선 새로 갖춰야 할 것이 많다. 이미 민간 우주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정부와 시너지를 내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우주 기업들은 아직도 정부의 발주나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처럼 미친 상상력을 발산할 인재를 키워낼 교육도 필요하다. 우주 반도체 개발이나,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한발 늦게 생긴 우주항공청의 정착과 같은 비교적 소소한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어디 우주뿐일까.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 양자, 에너지 기술까지, 새 시대를 맞기 위해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달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누군가는 화성을 산업의 다음 전장으로 만들 때, 한국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지난 일주일간 뉴스를 살펴보니 그 답이 나왔다. 멕시코 칸쿤. 우주시대로 가기 위한 정책과 예산을 짜야 할 사람들이 칸쿤의 관광 명소에 대해 갑론을 펼치는 중이었다. 정치인의 칸쿤 출장이 불법인지 아닌지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석기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외유성 출장 문제가 아직도 국가적 화두로 떠오른다는 건 그야말로 ‘시대착오’다.
정치 스캔들과 정쟁이 없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우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미국이나 중국에서 이런 문제가 국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달이나 우주로 가는 로켓이 아니라 칸쿤으로 가는 버스를 따지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칸쿤에 간 정치인은 물론이고, 이 논란에 얽힌 다른 정치인들이 평소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책 차별성이 약하면 화제는 인물·행태에 집중되고, 큰 비전이 없을수록 작은 논란이 커지는 법이다. 우주·AI·에너지 같은 커다란 이야기는 자연히 생기지 않는다. 정치가 의도적으로 생산하고 설계해야 하는 이야기다.
아르테미스 2호가 발사대를 떠난 날은 한국 시각으로 보름날이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달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보름달이 유난히 동그랗고 밝아보였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곧 우리가 사는 시대가 된다. 달과 칸쿤의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 시대와 석기 시대 사이의 아득한 문명적 간극이다. 시대를 역행할 위험에 처한 건 이란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