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홍콩관광청이 도심 풍경을 촬영해 배포한 홍보 포스터.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다.

불야성(不夜城)은 사라졌다. 문 닫은 중국집에 찾아온 옛 단골처럼 잠시 황망했다. 예전의 홍콩이 아니었다. 재작년 출장 차 들렀을 때는 몹시 놀랐고, 얼마 전 휴가로 놀러 갔을 때는 조금 울적해지기까지 했다. 대학 시절 이곳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는데, 달라진 번화가는 너무도 명징한 쇠락의 증거였다. 샥스핀처럼 공중을 부드럽게 헤엄치던 네온사인, 홍콩을 상징하던 빛이 종적을 감췄다. 불 같은 야성으로 전역에 10만개가 넘던 색색의 간판은 400개 미만으로 줄었다. 도심의 표정은 놀랍도록 단순해졌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현대미술관(M+)에 갔더니 전시 중이었다. 네온사인이 흰 벽면에 전통 공예품처럼 얌전히 붙어 있었다. ‘NEW VERY GOOD TAILOR.’ 인근 양복점에서 떼어 왔다고 한다. ‘NEW’도 아니고 ‘VERY GOOD’도 아닌, 실내에서만 겨우 불 밝힐 수 있는 옥외 선전물. 시각 공해와 사고 위험 등을 당국은 철거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개성의 탈거를 중국식 권위주의 통제, 즉 획일적 본토화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혹자(스위스 사진가 파스칼 그레코)는 네온사인이 본토식 간체(簡體)가 아닌 번체(繁體)로 주로 제작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한다.

‘천장지구’ ‘중경삼림’ ‘타락천사’의 낭만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이제 화양연화(花樣年華)일 뿐이다. 네온사인은 효율이 떨어진다. 공장에서 찍어낼 수도 없다. 유리를 달구고 숨을 불어넣어 지극 정성 모양을 내는 탓에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다양성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든 정책이든 시대를 주도하는 권력이 있으므로 교체가 마땅하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네온사인의 실종은 고작 약간의 추억거리, 볼거리가 줄어든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홍콩의 밤거리에서 쉬이 고개 돌리기 힘든 이유는, 한때 그것이 은유하던 어떤 자유, 활력의 연쇄적 소등(消燈)을 떠올리게 되는 탓이다.

홍콩 마지막 야당이 지난해 12월 간판을 내렸다. 최후의 민주주의 진영이 공식 해산했다. “힘 닿는 범위에서 모든 걸 시도했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에 전반적인 환경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세력이 압도적으로 기운 이상 예견된 일이었다. AP통신은 “한때 다양했던 정치 지형이 종말을 고했다”고 했다. 억압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법안이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동안 의견과 논쟁은 입이 틀어막혔다. 비판적 언론 역시 잇따라 폐간됐다. 정권 견제에 적극적이었던 빈과일보 창업주는 선동 자료 출판 등의 죄목으로 지난달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고강도 행정 명령에 식당 주인이 네온사인을 떼내듯, 하나의 당색(黨色)으로 도시는 빠르게 물들고 있다.

야성이 꺼져가는 불야성(不野性)의 도시는 홍콩만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입틀막법’으로 불린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야당의 필리버스터에도 국회를 통과했다. 세력이 압도적으로 기운 이상 예견된 일이었다. 최근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목격됐다. 표현의 자유가 허위 사실 유포와 처벌이라는 공포 속에서 위축되는 사이, 시각 공해와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형해화되는 사이, 야당의 존재감은 지리멸렬한 세싸움 속에서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조만간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워하는 광휘, 명멸하는 네온사인이 멀리서 경고 사인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