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처럼 경기도 남쪽으로 내려갈 때면 늘 몇 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예전에는 오전 6시 전에만 출발하면 별 정체 없이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요즘은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더 고역이다. 경기도 남부에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면서 차량 통행량이 증가해서다. 2016~2025년 경기도에서 늘어난 인구 101만명 가운데 63만명이 용인·화성·오산·평택에 몰려 있다. 기업과 공장, 연구소가 들어서고 그에 발맞춰 신도시가 건설되면서다.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바로 맞은편 평택 고덕신도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 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곳은 서울, 정확히는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구 일대다. 집값과 계층 지위는 강남 3구를 정점으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판교의 IT 회사 근로자들은 좀 더 남쪽의 용인에서 출퇴근하고, 판교 아파트 거주자들은 서울에 직장이 있다. 당연하게도 동탄이나 고덕에 사는 30~40대 근로자들의 목표는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 호황이 서울 집값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계층·자산·지리가 결합한 위계 서열은 자연 법칙이 아니다. 강남 3구에 부와 기회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문화·의료 시설도 서울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강남’ 또한 만들어진 곳이다. 원래 서울의 중심은 광화문과 종로 일대였다. 기업들이 옮겨가고, 명문 중·고교를 비롯해 생활 시설이 정책적으로 집중되고, 도로와 지하철이 계속 뚫리면서 ‘사대문 안’ 주민들이 먹을 채소를 경작하던 논밭이 서울을 대표하게 됐다. 심지어 강남 내부에서도 중심이 계속 동남쪽으로 이동했다. 기업이 움직이고, 인프라가 개발되고, 이를 따라 사람이 움직인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 대기업 본사를 더 남쪽으로, 기업들의 실제 사업장이 있는 용인·화성·평택 일대로 옮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경기 남부에 한국을 대표할 새로운 중심 업무지구를 만들자는 얘기다. 인천국제공항, 세종시와 고속 광역 교통망으로 연결하고 대학과 전시·컨벤션(MICE) 시설을 집적하면 세계적인 첨단 산업 중심지를 건설할 수 있다.
수도권은 점차 넓어지고 있고, 천안·아산이나 청주·진천·음성까지 생활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굳이 먼 북쪽에 본사를 둘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회장도 수원이나 용인으로 출근하는 일이 잦다. 종로 터줏대감인 두산이 성남 분당에 새 사옥을 짓는 등 본사 기능의 남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를 좀 더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가속하자는 얘기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대규모 공장 건설로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순 없다. 사람과 정보, 돈이 모이는 중심지는 여전히 서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서울과 거리는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지방’이 아닌 수도권 남부의 자생력을 끌어올리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를 통해 ‘사무직은 판교, 엔지니어는 기흥이 남방한계선’이라는 통념을 깨뜨려야 지방으로 첨단 산업이 옮겨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서울은 고령 자산가들이 부동산을 통해 부를 늘려 가는 도시다. 지금의 지리적 위계 서열이 유지되는 한, 젊은 근로자에게서 나이 든 자산가로 부가 이전되는 구조가 강화될 뿐이다. 1960~70년대 강남 개발이나 1980~90년대 분당·일산처럼 30~40대가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늘려 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경기 남부에 대기업 본사 기능을 이전해 ‘제2의 강남’으로 육성하는 것은, 지역 개발은 물론 젊은 세대를 위한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