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에서 방문 연구원 생활을 하는 동안 ‘힐우드 박물관’을 자주 찾았다. 시리얼로 유명한 포스트 집안의 상속녀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1887~1973)의 저택을 사후에 박물관으로 꾸민 곳이다. 침실부터 화장실까지 생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박물관에 왔다기보다는 초대받아 방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던 포스트는 백악관에서 20분 거리인 이곳에서 봄·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되면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추운 계절을 나기 위해 그가 1927년 플로리다 팜비치에 지은 저택이 마러라고 리조트다. 1973년 포스트는 마러라고를 ‘겨울 백악관’으로 쓰라며 미 정부에 기증했다. 이후 엄청난 유지비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저택을 유족에게 반환했다. 1985년 이 저택을 매입한 도널드 트럼프가 훗날 대통령이 돼 현재 ‘남부의 백악관’처럼 쓰고 있으니 원주인의 의도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 셈이다.
이 이야기를 요즘 자주 떠올리는 것은 매물로 나온 마러라고를 취득하는 과정에 트럼프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부촌인 팜비치에서도 독보적인 이 저택에 매료된 트럼프는 처음 제시한 금액이 퇴짜를 맞자 바로 앞 해변 부지를 사들이고 바다 전망을 가리는 건물을 짓겠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조망권 침해 이슈’에 가치가 하락한 마러라고를 헐값에 매수했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마는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다.
군사 작전으로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축출한 일도 마찬가지다. 그 배경과 의미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본질은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인도할 원유의 양을 작전 개시 사흘 만에 구체적 수치로 언급했다. 그가 원한 것이 일차적으로는 석유였음을 시사한다.
더 크게 보면 서반구 패권도 원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중남미 여러 국가 선거에 개입하며 블루타이드(우파 연쇄 집권)에 일조해 왔다. 마두로 치하의 베네수엘라는 선거로 정권 교체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부터 마약 차단을 명분으로 의심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2024년 대선에서 마두로가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거머쥐는 걸 보면서 트럼프는 결심을 굳혔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베네수엘라에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공산이 커졌다. 미국 중심으로 안정된 서반구를 원하는 트럼프에게 꼭 필요한 변화였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안전과 번영도 트럼프가 이처럼 절실히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 트럼프는 첫 임기에 시리아에서 철군하며 “이익이 되는 곳에서만 싸우겠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도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며 비슷한 발언을 했다. 타산이 안 맞는다 싶으면 손을 빼는 데 망설임이 없다.
마두로 체포 작전이 중국·러시아에겐 ‘신호’가 될 수 있다. 미·중·러 강대국이 각자 세력권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파가 가장 먼저 닥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마두로 체포 직후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제 정세를 이야기하며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했다. 어느 세력권에 들어오겠냐는 물음으로 들린다. 이 대통령은 이 발언에 대해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 착하게 잘 살자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했다. 그렇게 슬쩍 눙치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질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