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공항 이전 협상 타결은 이재명 정부가 광주·전남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군 공항 이전은 대개 새로운 시설을 먼저 짓고 비워지는 기존 부지를 개발해 수익을 내는 ‘기부 대 양허’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2015년부터 인구가 감소해 온 광주가 여의도 2.8배(8.2㎢) 면적의 부지를 개발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십수 년간 이전 사업이 헛돈 근본 원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무총리실까지 나섰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는 무능함만 드러냈다. 그런데 지난 6월 이 대통령이 “정부 주도로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뒤 군사작전 같은 속도로 파격적 지원 방안이 나왔다.
공항 이전이 똑같이 지지부진하던 대구가 뒤집어진 건 당연했다. 대구공항 이전은 민간 사업자가 나서지 않아 공공 개발 방식으로 추진 중이었다. 정부 공공자금관리기금을 끌어다 사업비를 충당하려 했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민주당 정권이라 TK를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두 사업의 엇갈린 모습은 단순히 이재명 정부가 텃밭에만 신경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정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광주가 ‘잡아놓은 물고기’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에 가깝다.
민주당 정치인이 광주를 신경 쓰는 이유는, 그 지역이 늘 ‘될 사람’을 점찍고 전략적으로 키워주기 때문이다. 민주당 주류가 미덥지 않으면 당 밖에서 과감하게 대안 세력을 키워 경쟁을 부추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로 뽑힌 2002년 대선 경선부터 2016년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돌풍까지 그 진원(震源)은 광주였다.
결국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는 ‘선거에서 승리해 정치권력의 곁불이라도 쬐게 해줄 수 있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출신 지역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지역민의 정치의식이 깨어 있어서가 아니다. 변변한 기업 하나 없이 낙후된 지역에서 정치권력이 주는 혜택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광주 민심과 소통한다는 것은 자신의 승리 전략과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행위에 가깝다. 2016년 총선에서 호남의 민심 이반에 직면한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경우, 부인 김정숙씨가 수시로 광주를 드나들었다. 핵심 메시지는 ‘왜 문재인의 민주당만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느냐’였다.
수도권으로 기업이 몰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중산층 유권자 덕분에 정치권력이 더 강해지는 상황에서 광주의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다. 매해 투자(총고정자본형성)에서 각 지역이 차지한 몫을 보면 광주·전남은 2002년 6.7%, 2024년 6.6%로 상대적 지위를 지켜냈다. 반면 대구·경북은 같은 기간 12.6%에서 9.7%로 급락했다.
한때 ‘대통령이 특산품’이라는 말까지 있던 대구는 보수 정치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역대 국민의힘 대표 중 대구·경북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구 여론이 국민의힘을 뒤흔든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지역 경제가 어려움을 겪어도 보수 정치인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1990년 민주자유당 출범으로 보수 텃밭이 되었던 부산·울산·경남의 이탈은 가시권에 들어섰다.
광주의 사례는 날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지역이 어떻게 ‘서울(중앙 정치)’을 상대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지역의 공공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치 영역에서 리더십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의 혁신을 앞장서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대안 세력을 키워주는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 대구가 보수의 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건 그곳이 보수의 본진이어서가 아니라, 대구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