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넷플릭스를 볼 땐 시시한 영화를 찾게 된다. 골치 아픈 일은 현실에도 많은데 영화 보면서까지 심각해지고 싶지 않아서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도 그렇게 선택한 영화였다. 다이너마이트처럼 빵빵 터지는 액션 활극인 줄 알고 시청 버튼을 눌렀다.
기대와 달리 액션도 활극도 아니었던 이 영화는 태평양 너머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의 공포를 서늘하게 그리고 있었다. 탄착(彈着)까지 남은 18분 안에 대응 조치를 결정해야 하는 미 안보 라인의 혼란을 실감 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핵전쟁의 풍경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전쟁은 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장기를 발휘해 온 주제다. 냉전 시절 소련 원자력 잠수함 사고를 그린 ‘K-19 위도메이커(2002)’의 전장이 심해저였고, 이라크전 배경의 ‘허트 로커(2008)’와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2012)’의 전장이 먼 나라였다면, 이 작품의 전장은 사무실과 회의실이다. ‘전투 장면 없이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는 평이 많지만 정확히 말하면 전투 장면이 없는 게 아니다. 관련 부처에 전화를 돌리고 화상 회의를 하며 대응책을 고심하는 모습이 ‘전투 장면’처럼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새로운 전쟁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NBC뉴스 사장을 지낸 각본가 노아 오펜하임이 언론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구식 전쟁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갖고 있을 뿐 핵전쟁의 실상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백악관 상황실에 파견된 장교도, 국방부 장관도, 대통령도 평소처럼 업무를 보던 중에 자신이 전쟁의 한복판에 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이들 모두 가족을 찾는다. 세계 최강국의 안보 책임자들이 가장 인간적인 위안을 구하는 장면은 수백만 명의 생사를 가를 결단의 무게를 어떤 직함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으로는 눈을 돌려버리고 싶기도 했다. ‘태평양 너머’에서 미국에 미사일을 쏠 법한 곳으로 러시아·중국과 함께 북한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이 중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긴급히 연락을 시도하는 상대로 그려지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무기 투발(投發) 능력을 정확히 알지 못해 우왕좌왕할 뿐이다. 이런 설정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가 지근거리에서 핵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환기한다.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작품의 의도라면 성공한 셈이다.
요격 미사일의 적중률을 비롯한 영화의 기술적 정확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지만 이는 핵심이 아니다. 인류의 작은 집이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차게 된 현실이 본질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026년의 세계’ 특집에서 내년 예상되는 국제 정세의 흐름 중 하나로 ‘핵무기 통제의 종말이 다가온다’를 꼽았다. 미·러 사이의 마지막 핵 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종료(2월)를 앞두고 최근 미국은 핵실험 재개를 선언했다. 러시아 역시 신형 핵무기 개발 소식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구심을 느낀 동맹국 사이에선 자체 핵무장 여론이 일고, 중국도 보유 핵탄두를 늘리고 있다.
영화 예고편에는 ‘창백한 푸른 점(1994)’을 낭독하는 저자 칼 세이건의 음성이 나온다. 31년 전에 나온 책의 문구가 후세에 전하는 경고처럼 들린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도움의 손길이 저 우주의 어둠 속에서 전해질 거라는 징조는 없습니다. 지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집을 소중히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