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튀겨낸 치킨을 집어 입에 대려는 순간, 뜨거운 김에 실려 고소한 향이 코끝에 확 올라온다. 이를 대면 얇고 단단한 껍질이 경쾌하게 부서지며 속살을 드러낸다. 촉촉한 육즙이 뜨겁게 차오른다. 이때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면, 치킨의 기름진 풍미가 탄산과 함께 사라지며 목을 타고 내려간다. 입안에서 바삭함과 청량함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탁!’ 하고 깔끔한 여운은 다시 치킨을 집어 들게 만든다.

“10년 만에 밖에서 ‘치맥’을 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치맥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치맥을 한 번도 안 할 순 있어도 10년 만에 하기는 쉽지 않다. 한번 해보면 그 맛을 잊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마 예전에 해본 치맥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을까. 그가 치킨의 살을 야무지게 뼈에서 발라 먹는 모습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왜 10년 동안 치맥을 하지 않았을까.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회동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젠슨 황의 현지 음식, 노점 음식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대만을 갈 때마다 야시장에서 돌아다니면서 굴전이나 더우화(두부 푸딩)를 먹는다. 2023년 12월 베트남 첫 방문 때 쌀국수와 맥주를 즐겼고, 이듬해에는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함께 하노이의 타히엔 맥주 거리를 찾았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비크람 신하 인도삿 CEO와 만났을 때도 노점 식당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굴틱(꼬치 음식)’을 먹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의 치킨집, 그것도 밖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치맥을 하는 ‘깐부 회동’쯤은 그에게 꽤 얌전한 행보에 속한다.

이번 깐부 회동은 젠슨 황의 딸 매디슨이 기획했다. 매디슨은 애초에 깐부 회동을 마친 세 회장이 함께 코엑스까지 걸어가는 구상도 내놨다. 이는 삼성전자 측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안전상의 문제”. 지도에서 검색해 보면, 이 치킨집과 코엑스몰은 걸어서 6분 걸리고, 안전을 위해 큰길로만 걸었을 경우엔 12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매디슨과 엔비디아 측은 의아했을 것이다. 대만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거리를 활보하던 젠슨 황에겐 여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세계에서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서울 시내가 위험하다니. 서울 강남의 큰길을 10분 걷는 데에도 안전을 걱정해야 한다면, 이 회장이 지난 10년간 밖에서 치맥을 하지 못한 이유가 이해가 간다.

이번 회동을 지켜본 한 외신 기자가 삼성전자 관계자에게 “이 회장은 말을 잘하고 재밌는 성격인 것 같은데 왜 신비주의를 고수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국내의 많은 재벌, 대기업 총수들이 ‘은둔형’에 가깝다. 사람들은 재벌에게서 압도적인 부와 한 개인이 국가 산업을 대표한다는 상징을 떠올린다. 동시에 “저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도 받아들인다. 재벌에 대한 대중의 경외와 반감이 양날의 검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재벌, 대기업 총수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은둔성은 ‘기득권의 불투명성’과 연결돼 또다시 반감을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反)재벌 정서를 발판 삼아 정치권은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 ‘특정 기업 때리기’ ‘재벌 개혁’을 반복적으로 의제로 삼을 수 있었다.

젠슨 황이 집에서는 푸아그라와 캐비아를 먹는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대중은 그를 “대단하지만 친근하고 소탈한 기업인”이라고 생각하지 “독점적 빅테크의 수탈자”와 연결 짓진 않는다. 젠슨 황처럼 대중과 소비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자기만의 해법을 생각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