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성 6년 차가 된 대학 동기 카톡방이 있다. 이름은 ‘안티 현미 클럽’. 친구 A의 병문안을 했던 인연들인데,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 반드시 현미가 들어간 밥이나 술을 곁들인다. 다 함께 현미를 오도독 씹으며 ‘김현미 국토교통부’의 피해자인 A에게 위로를 보내고, 다시는 정부에 속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실거주 의무화가 되며 수도권 아파트 월세가격 상승률이 최근 1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에 전·월세 안내문이 붙어있다./뉴스1

A는 2020년 여름 급성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결혼 준비를 했는데, 신혼 전셋집을 두고 약혼자와 ‘서울 역세권 구축 복도식’과 ‘언덕배기 신축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중에서 고민하는 사이에 6·17 대책과 임대차 3법 쓰나미를 맞았다. 며칠 새 전세 물량이 확 빠지거나 2억원 이상 폭등하는 아비규환이 펼쳐지자 A는 약혼자와 서로를 탓하다가 파혼했다. 구내식당과 BMW(버스·지하철·걷기)를 애용하며 재형저축으로 목돈을 모았던 친구는 자고 나면 부동산 시세가 1억~2억원씩 뛰는 현실에 억울해하다 쓰러졌다.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잖아. 그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자 A는 서울 동작구 아파트를 대출 끼고 일사천리로 샀다. 14억원이던 매매가가 요즘엔 20억원을 넘겼다고 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규제로 집값이 폭등한다는 기출문제가 나와 있는데, 누가 알고도 또 틀리겠어.” 멤버 B는 ‘집값 폭락론’을 신봉하던 직장 동료가 추석 연휴에 서대문구 아파트를 샀다면서 “2022년 ‘둔촌주공 미분양’ 때도 낄낄거리던 사람이, 이번엔 가보지도 않고 계약서부터 쓰더라”고 했다. C는 맞선 본 얘기를 했다. “못생기고 매력 없던 상대방이 ‘나는 왕십리에 아파트가 있다’고 위세를 떨길래 꼴사나웠거든. 그런데 서울을 평양처럼 묶어버린 10·15 규제 이후엔 그 사람이 특별하게 보이는 거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이끄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은 이미 수도권 노른자 땅에 집을 (더러는 여러 채) 가진 관료와 정치인이다. 이들의 행태를 ‘내로남불’로 꼬집는 것은 지겹고도 불충분한 비판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상 로맨스든 불륜이든 타인의 사생활은 알 바 아니나, 정부가 주택 거래에 장벽을 쌓고 세금을 멋대로 부과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옥죄는 치명적인 간섭인 까닭이다.

200년 전 다산 정약용조차 “사대문 밖으로 절대 이사 가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신신당부할 만큼 수도권 부동산은 유구한 수요를 자랑한다. 마땅한 공급책도 없이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올해 코스피가 연초 대비 약 70% 올랐지만 주식 ‘포모(FOMO·나만 돈 못 번다는 불안함)’를 호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아파트 포모는 도처에 널렸다.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이들도 최종 목적지는 부동산이다.

현 여권 세력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정치 귀족으로서 존중한다. 이들은 운동권 화염병처럼 무장 투쟁까지 불사하는 권력 의지를 드러낸 끝에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을 거쳐 국회를 압도하는 입법 귀족이 됐다. 귀족이란 본디 법을 입맛대로 만들고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누리기 마련. 특정인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거나 재판을 없애려 들고, 검찰청을 해체하고, 가짜 뉴스를 살포하면서 축의금과 출판 기념회로 재산을 불려도 귀족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서민 아파트 15억원’ 운운하며 국민의 둥지까지 어설픈 배아파리즘 갈라치기로 파괴하려 든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현미를 오도독 씹으며 벼르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