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망가지는 것이다. 한국철도공사는 ‘미스 기관사’를 앞세웠다. 홍보실 소속 여직원(29)의 유튜브 활동명. 각종 유행을 재빨리 포착해 코믹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청룡 열차 타듯 KTX-청룡 좌석에서 난리법석을 피우고, 마이클 잭슨을 흉내 내며 무리한 승차를 경고하는 일련의 작품(?)을 보자면, 몸 사리지 않는 그 노력을 분골쇄신이라 평해도 모자람이 없다. B급 감성으로 심리적 문턱을 낮춰 그간 무거웠던 대외 인식을 쇄신하려는 전략. 1년 만에 공공기관 이미지 변신의 성공 사례로 떠올랐다. 무관심에 방치되던 공식 유튜브 댓글창은 유쾌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

진짜 비명은 지난 8월 울려 퍼졌다. 선로 작업자 7명이 열차에 치였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이틀 만이었다. 2명이 사망했다. 본사 압수 수색이 진행됐다.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철도공사에서 발생한 사상 사고가 자그마치 726건이었다. 음주 운전·성희롱 등 최근 6년간 징계 건수가 1391건, 비위 행위로 징계받은 직원은 5년 만에 103명에서 484명으로 급증했다. 질타가 쏟아졌다. 국정감사 종료 이튿날, 공사 유튜브에는 ‘골반이 멈추지 않는 병’이라는 B급 코믹 댄스를 따라 추는 영상이 올라왔다. 웃을 수가 없었다.

일례에 불과하다. 전북 군산시는 요즘 기세가 등등했다. 공보 담당 공무원(31)의 쇼츠 영상 덕이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노래 ‘섹시 푸드’를 패러디해 “짬뽕·잡채·수제비·꽃게장·박대·흰찰쌀보리” 등 지역 대표 먹거리를 열거한 이 게시물은 지난 8월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 수 200만을 넘겼다. 웃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민망한 분장과 능청 연기를 감내한 여 주무관의 혼신에 ‘좋아요’ 7만7000개가 찍혔다. 실제 이수지가 직접 댓글을 남길 정도였다. 군산 여행 계획을 세웠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군산시 공무원은 장르가 다르네요. 감탄하고 갑니다.”

B급 감성으로 공공기관 홍보의 새 장을 열어젖힌 충주맨. 그를 답습하려는 전국적인 움직임이 점입가경이다. /유튜브

진짜 탄성은 2주 뒤 터져 나왔다. 군산시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 간 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업무 시간, 민원인들이 버젓이 지켜보는 와중에 벌어진 충격적인 진풍경이었다. 시 관계자는 “기강 해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라며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민주당 소속 한 군산시의원이 자신의 발언 시간을 제한했다며 상임위 위원장의 뺨을 때리는 황당 사건도 벌어졌다. 군산시와 시의회는 공공기관 종합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 B급도 안 되는 셈이다.

아무리 열심히 웃겨도 본말이 전도되면 꼴이 우스워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철도에 기대하는 건 안전한 운행이고, 시에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시정(市政)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공직 사회에 불고 있는 ‘B급 콘텐츠’ 열풍에는 웃음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광범위한 안일함이 자리 잡고 있다. 충주시를 일약 유튜브 명승지로 키워낸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의 활약 이후 벌어진 일이다. 저예산의 자구책이던 B급이 뜻밖의 성공 방정식으로 간주되면서, 지자체·공공기관마다 젊은 직원을 차출해 우후죽순 어설픈 유튜버로 변신시키고 있다. 춤추고 개그 짜느라 머리 싸매는 일, 이것이 새 공무(公務)가 돼가고 있다.

친근해지기 위해 기꺼이 B급으로 망가지는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조직이 본업에 부실할 때 미스 기관사와 군산 이수지, 제2·제3의 충주맨은 최일선의 욕받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B급은 삐끗하는 순간 더 큰 공격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급 일 처리다. 코미디는 이미 도처에 넘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