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범죄 하수인으로 전락한 청년들을 보면 상주·예천·음성·여수 등 비수도권 중소도시가 많이 등장한다. 광역시는 대구와 광주 정도다. 그리고 이들이 고액 아르바이트에 낚여 납치나 사기를 당하고, 대학 선배나 지인이 모집책이나 중개인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꽤 익숙하다. 보이스피싱, 마약 매매, 사기에서 말단 조직원이 충원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몸통’이 안전하게 똬리를 틀 수 있는 동남아 국가가 끼어 있는 것만 다를 뿐이다.
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중 20대 이하는 38.8%(8471명)다. 지역별 인구(20~29세 기준)로 나눠 보면 서울은 1만명당 12.8명, 인천·경기는 13.4명인데 비수도권 광역시는 19.6명, 도(道)는 15.2명이다. 또 2021년 발표된 논문(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 경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돈을 받아낸 뒤 전달하는 ‘전달책’ 가운데 70.6%는 구직 사이트의 고액 일자리 광고를 통해 모집됐고, 다수가 청년이었다.
‘지방’이라 불리는 비수도권의 쇠퇴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고 가난한 청년이 늘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와 규범이 무너지고 분별력도 희미해져 범죄가 늘어난다. 취업 사기에 당할 정도로 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고 ‘한 방’을 찾는 이도 흔해진다. 각종 범죄의 초입 또는 예비 단계쯤 되는 청소년 도박이 잘 보여준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지난해 실시한 청소년 도박 실태 조사 원자료를 바탕으로 지역별 ‘도박 경험’ 고교생 비율을 분석하면, 수도권은 3.7%인데 호남권 12.0%, 강원·제주권 6.1%, 충청권 4.8%, 영남권 4.5%로 압도적인 격차가 나타났다.
지방 붕괴의 징후는 자살에서도 완연하다. 2023년 청년 자살률(19~34세, 자살 통계 연보)은 서울이 10만명당 20.7명, 경기가 21.2명인데, 제주는 33.2명, 충북은 31.3명, 강원은 30.0명 등으로 큰 차이가 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엇비슷하던 청소년 음주 비율도 이제 서울보다 지방이 높다.
제조업이 몰락한 지역에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되며, 그 결과 알코올 및 약물 중독·자살·범죄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현상은 선진국에선 익숙한 문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그로 인한 사회적 죽음을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 부르며,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태어난 저학력 백인에게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밖 전역이 이에 해당한다는 점이 다르다.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은 지방 붕괴와 동전의 양면 같은 현상이다. 지난 1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두고 “이제 토지거래허가구역 밖에 사는 건 무지성”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서울에 온갖 좋은 것들이 다 모여 있는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진입을 점점 어렵게 하는 것 자체가 ‘방벽 밖’을 버리겠다는 ‘기득권’의 숨은 생각 아니냐는 것이다. 지방의 청년은 어떻게든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고, 부자들도 자신의 부를 옮기려 하고 있다.
무너진 지방과 별개로 서울만 안전하고 번영하는 곳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지방 청년들을 총알받이처럼 소모하며 늘어나는 범죄는 그 비용을 서울 사람들도 치러야 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해 20대 보이스피싱 피해자 통계를 보면, 서울은 1만명당 13.1명으로 전국 평균(9.0명)을 뛰어넘는다. 극단주의 정치 세력이 발호해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숙련공 부족으로 공장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문제도 남 일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캄보디아발 범죄는 지방 붕괴가 초래할 사회적 재난을 예고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