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고도 비만 환자들이 도넛을 서로의 입으로 옮긴다. 한입이라도 먹으면 팀 전원이 탈락한다. 누군가는 도넛이 너무 먹고 싶어 참다 못해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2004년부터 시즌 18까지 미국에서 방영되면서 수백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도전! 팻 제로’ 얘기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에서 비만 환자들을 모집해 온갖 가학적인 방법으로 참가자들을 훈련시켰다. 하루 5~6시간씩 뛰게 했고 저칼로리 음식만 먹였다. 살을 많이 뺀 이에겐 상금을 줬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불과 몇 달 만에 수십 kg을 감량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뉴욕타임스가 추적한 결과, 대부분은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 있었다. 살이 오히려 더 찐 사람도 있었다. 극단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이 오히려 기초대사량을 크게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비만을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오랫동안 비만을 게으름과 무절제, 도덕적 실패의 결과로 치부해 왔다. 연예인이 살 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 ‘관리 좀 해라’ ‘운동도 안 하냐’ 같은 악플 세례가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연구는 과체중이나 비만은 인간의 의지나 절제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역설한다. 2024년 9월 영국 비만 당뇨 센터가 국제 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은 장기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아지긴 더 어렵다. 신진대사율이 낮아지고 근육이 줄어서다. 올해 초 글로벌 질병 연구 프로젝트 ‘GBD’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비만·과체중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발표했다. 팬데믹처럼 번지는 비만을 극복하려면 더 체계적인 도움과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럴 땐 과학이 답을 내놓는다.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서는 요즘 ‘먹는 비만 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계열의 비만약을 먹는 형태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현재 시중에 나온 ‘위고비’나 ‘오젬픽’, ‘마운자로’ 같은 약들이 대표적이다. 이 약들은 식욕 억제 효과가 탁월하지만 주사 형태이다 보니 계속 맞기 쉽지 않고 약값도 비싸다. 이것을 먹는 알약 형태로 바꾸면 더 싸고 편하게 지속 복용할 수 있다. 물론 여러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은 아직 숙제다. 많은 연구자가 임상시험을 거듭하며 새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유다. 최근 미 식품의약국(FDA)도 먹는 비만 치료제에 대한 승인 심사 간소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인구 40%가 비만이다. 더 싸고 효과적인 비만 치료제가 빨리 나올수록 국민 보건에 이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방을 위해 환경부터 바꾸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와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과대학은 최근 걷기 좋은 도시, 치안이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비만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학교에서 더 질 좋은 급식을 먹이고 생활 체육 시간을 늘리는 것, 도심 속 공원을 더 확충하고 기업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했다. 사회정책과 일상의 환경이 획기적으로 같이 변할 때 비만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유명 여배우는 열여덟 살 아들의 고도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쓰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유튜브 채널에 털어놨다. 댓글 창엔 ‘응원한다’ ‘건강해지길 빈다’는 격려가 물결쳤다. 놀랍게도 누구도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운동부터 시키라’고 하진 않았다. 알고 이해하면 이렇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