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는 7일 강원 강릉의 한 하천에서 살수차들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운반급수를 위해 줄지어 취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한의 물 부족을 겪고 있는 강릉을 볼 때마다 2년 전 광주광역시의 가뭄이 떠올랐다. 천재지변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인재(人災)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특정 정당의 독주 속에서 주민들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 지역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광주는 가뭄으로 30년 만에 제한 급수 위기를 겪었다. 상수원인 동복호와 주암호의 저수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1991년 주암댐 건설 이후 새로운 상수원이 확보되지 않았고, 정수 시설이나 수도관이 낡은 게 근본 원인이었다. 수도관에서 물이 새는 비율인 누수율은 6.8%로 특별시·광역시 중 가장 높았다. 서울(1.7%)의 네 배였다. 빈번해진 가뭄에 비상 상수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예비 취수원인 제4 수원지는 가뭄이 시작되던 2022년 9월 오히려 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

위기 상황에서 광주시는 하루에 몇 차례씩 물 절약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재난 문자로 보내고, 인터넷에서 ‘비가 내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자며 기우제까지 열었다. 빈축을 산 문자 메시지 발송은, 정수장의 낡은 밸브가 터져 수만 가구 물 공급이 끊기는 사고가 터지자 돌연 중단됐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제대로 된 치수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만 있었다. 민주당 내에서 날 선 비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결과가 7월 강기정 시장이 3선 의원을 지낸 지역구(광주 북구 갑) 신안동에 집중된 홍수 피해다. 광주는 저습지와 하천을 메워 건설한 곳이라 상습 침수 구역이 꽤 있다. 복개한 하천을 복원해 물이 흐르게 하는 게 구조적 해결책이지만 최근까지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도시 미관, 보행로 확보 및 상권 부흥을 위한 하천 복원은 타 지역에선 지자체 단골 공약이었지만 말이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 경쟁 대신 토호나 조직이 있는 실력자를 붙잡아야 하는 당내 경선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김홍규 강릉시장이 “9월에는 비가 올 것이라 믿는다”고 하고, 시 당국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로 상황을 넘기는 모습은 그래서 낯설지 않았다. 2027년 준공 예정인 연곡정수장 설비 확장 및 현대화 사업 등을 내세워 책임을 모면하려는 듯한 태도도 광주를 보는 것 같았다. 강릉은 만성적 가뭄 피해 지역이었고, 강원연구원도 오래전부터 강릉을 속초와 함께 대규모 물 부족 사태 우려 지역으로 꼽아왔다. 지자체가 땜질식 대책에 급급하고 시민들이 반복된 불안을 감당해야 하는 건, 이 지역이 유권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국민의힘 절대 우위 지역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속초가 대규모 상수도 인프라를 확보해 물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해 초 가뭄으로 제한 급수를 겪자 물 부족 대책이 핵심 쟁점이 됐다. 김철수 민주당 후보는 ‘물 자립 도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 최우선 시정 과제로 이를 추진했다. 김 시장이 중앙정부 관계자들을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예산을 따내는 건 당연했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치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울도 1990년대까지 수돗물 질 문제가 심각했지만, 시장 후보들이 앞다퉈 해결하겠다고 나서 언제나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됐다.

지방정부의 위기는 가뭄과 홍수로만 닥치는 게 아니다. 탈공업화·고령화, 젊은 층 이탈까지 겹쳐 지속 가능성이 위태롭지만 대응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당 독주의 정치가 경쟁 없는 선거, 책임 없는 거버넌스를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생존 조건을 위협하는 것은 기상이 아니라 정치다. 지역 정치에서 경쟁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