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은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50대 남성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서울 충무로역 인근 한 뮤직바 입구, ‘50대 이상 남성 혼술 사절’이라고 적혀 있다. 바로 옆 벽면에 걸린 ‘Oldies But Goodies(구관이 명관)’ 레코드판 표지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실내에도 ‘목소리 큰 손님 사절, 50대 이상 남성 전체 퇴출 경고’ ‘옆자리 젊은 손님에게 말을 걸지 마시오’ 같은 냉혹한 경고문이 있다. 반전은 이곳 주인장도 해당 연배의 남성이라는 사실. 저간의 사정이 있으리라.
두 달 전에는 울산의 한 주점에 나붙은 안내문이 화제였다. ‘50대 이상 한국인 중년 남성 출입 불가.’ 실은 안내문보다 세간의 반응, 즉 공감의 분위기가 더 놀라웠다. “안 들어도 이유를 알겠다”는 것이다. 이곳 30대 사장은 “반말, 고성방가, 실내 흡연 등으로 정신적 고통이 컸다”고 했다. 록 음악 틀어주는 가게인데 임영웅 노래를 요구하거나, 만취해 난동을 부리는 ‘진상’ 대부분이 이 세대였다고. 진상 감별 1급 자격증을 보유한 본 기자 역시 그들로 인해 인류애를 잃을 뻔한 적이 수차례였음을 고백한다.
50대 남성, 머릿수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인구의 약 17%(870만명)를 차지하는데 남자가 조금 더 많다. 권위주의 시대를 관통해왔다. 20대 취직, 60세 전후 퇴임의 생애 주기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서도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그러니 눈치 보지 않고, 반말이 자연스럽고, 어디서나 목소리가 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수년 전에는 부산대 앞 술집에 ‘노(NO) 교수 존’ 팻말이 내걸렸다. “혹시 입장하셨다면 절대 스스로 큰 소리로 신분을 밝히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존재감의 과시, 전 연령대에 걸친 눈총의 원인. 그러나 여기서 어떤 고독의 징후는 발견된다.
내리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살률 1위가 50대(21%)였다. 통계청 조사 결과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넘게 많았다. 은퇴 및 건강 악화 등이 겹치는 좌절의 변환기, 조직 이탈의 상실감, 그럼에도 가계를 떠받쳐야 하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 등이 뒤섞인 결과일 것이다. 지금 그들을 거부하는 건 술집뿐만이 아니다. 50대 고용률은 16개월 연속 하락을 기록 중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50대 취업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쉬었음 청년’ 못지않게 50대의 문전박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년과 노년 사이, 중장년의 낀 세대. 쉽사리 그만둘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좌불안석의 테이블에서 술을 들이켠다. 다소 서툰 태도로 허장성세를 부리고 쩌렁쩌렁 홀로 목청을 높인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50대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비중은 우울·무기력감이 가장 컸다. 한국이 사무쳐 투머치 토커가 된 야구 선수 박찬호(52)처럼, 다른 고래보다 두세 배 높은 주파수로 울어 무리에 끼지 못하는 ‘52헤르츠(㎐) 고래’처럼, 그들의 민폐는 일종의 조난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문 앞에서 이내 발길을 돌려야 한다.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는 훈계(메이지대학 사이토 다카시 교수)처럼, 살기 위해 그들은 변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냉정한 곳이고 누구에게나 거부할 자유는 있는 법이기에. 다만 몰아내고 외면하는 게 상책일 수는 없다. 그러기엔 그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오십견의 비애가 한번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