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노조와 맞서 싸운 투사, 강성 신자유주의자의 면모만 부각된다. 그런데 대처가 장기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라는 비전에 있었다. 그는 국가가 갖고 있던 임대 주택 150만채를 거주자에게 싼값에 매각했고, 나아가 통신·운송·석유·전기·가스 등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해당 기업의 근로자와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을 주식 투자자로 만들었다. 대처 정부가 들어선 1979년엔 영국 국민의 4.5%만 주식을 갖고 있었다. 대처의 퇴진 이후 첫 총선이 치러진 1992년 이 비율은 25%로 치솟았다.
새롭게 주식 보유자 대열에 합류한 중산층은 보수당을 지지했다. 이들 중 54%는 보수당에 투표했다. 노동당을 지지한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았다.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직원과 국민에게 그 과실을 폭넓게 나눠주자 보수당 정책에 대한 저항을 낮출 수 있었다. 영국 좌파 사회학자인 스튜어트 홀이 민영화에 대해 “자유시장을 열정, 추진력, 좋은 가치들의 유일한 원천으로 계속 유지”하고 “공동 소유를 확대하여 대중적 자본주의라 부르는 이념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는 전략이라 평가한 이유다.
이재명 정부의 ‘밸류업(증시 저평가 해소)’ 정책은 대처의 소유자 사회 정책과 묘하게 닮았다. 핵심은 개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주식 투자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 주식으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1400만 개미와 함께, 5200만 국민과 함께 ‘코스피 5000’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실현”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잘 드러난다. 논란은 있지만 배당소득에 대해 저율 과세 혜택을 주는 식으로 세법을 바꾸거나, 상법 개정을 통해 기관 투자자나 개인 등 소수 주주가 기업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려 하고 있다.
지난해 주식·채권·펀드를 보유한 가계는 30.1%이고, 평균 규모는 순자산의 4.6%다(가계금융복지조사). 40대(40.0%)와 30대(38.4%)에서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선 경우가 많긴 하지만, 순자산 대비 비율은 5%대에 불과하다. 공약 실현을 위해서는 자산 중 주식 비율이 대폭 늘어야 한다. 실제 투자 저변을 넓혀 기업의 성장 과실을 주식 시장을 통해 중산층에게 나눠주겠다는 게 대통령실과 여당의 전략이다. 수출 대기업이 독주하면서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젊은 수도권 중산층을 위한 대안적 재분배 경로를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다.
토지 개혁이 보여주듯 정치의 덕을 보고 무언가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는 것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밸류업 정책을 꾸준하게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것이 가진 정치적 폭발력 때문이다. 일종의 ‘주주 민주주의’를 새로운 지지 기반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만큼이나 금융 자산의 불평등도 심하고, 진보의 비판 대상이던 영미식 금융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맡게 됐다는 불편함에도 진영 내 비판이 많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보수다. 보수는 오랫동안 부동산에 기반한 소유자 사회에 의존해 왔다. 집값은 껑충 뛰었는데 경제성장률은 연 1%를 밑도는 저성장 환경에서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요즘 국민의힘 정치인을 만나면 재개발 이슈가 얼마나 선거에 도움 됐는지 회상하는 이야기와, 20~30대를 어떻게 잡을지 묻는 질문을 동시에 받곤 한다. 유권자 절반이 무주택자인 수도권에서, 60~70대 지주를 위한 정책으로 선거 승리가 가능할까. 보수가 민주당을 이기고 싶다면 그들보다 더 평범한 사람들의 발전과 향상 욕구를 자극할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