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은 판타지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 그게 뭔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넷플릭스에서 찾아보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드라마 ‘참교육’을 제작하고 있다. 동명의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최근 촬영에 돌입했고, 내년 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힘과 돈 앞에서 교과서는 패배한 지 오래, 아이들은 영악할 대로 영악해졌다. 교육부 장관 주도로 ‘교권보호국’이 창설된다. 물리 치료 권한을 지닌 소속 공무원이 문제 학교에 파견돼 불의를 박살 낸다. 무력한 교실을 무력으로 회복한다는 줄거리, 토벌의 카타르시스가 제법 있다.

사실 참교육은 전교조가 1989년 결성 당시 내세웠던 표어다. 이제는 다른 의미가 됐다. 더는 참지 않겠다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정의 구현의 구호로 더 자주 쓰인다. 소 귀에 경 읽는 사이 농부만 화병으로 죽어나간다는 민심, 드라마는 그 반영이라 할 것이다. 전교조는 드라마 제작 중단 운동에 나섰다. “교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학교에서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 침해 행위를 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고 발끈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참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실사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인 동명 웹툰 '참교육' 한 장면. 폭력적 묘사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으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넷플릭스까지 진출했다. /와이랩

드라마는 웃고 지나갈 수 있다. 외면하면 그만이다. 지난 16일 생중계된 교육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그러나 청소년 관람 불가로 지정해야 할 정도의 장관(壯觀)이었다. 이진숙 후보자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이 빗발쳤으니 더 보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악한 장면은 따로 있다. 질의를 준비하던 김대식 의원이 후보자를 향해 “앞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느냐”고 물었다. “모르는 것에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고 답변은 하지 마라” “동문서답하라” 같은 모범 답안(?)을 누군가 쪽지처럼 포스트잇에 적어 후보자에게 줬다는 폭로였다. 대한민국 교육의 우두머리가 되려는 자에게 건네진 ‘커닝페이퍼’가 이 정도 수준이라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울까.

한국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이때의 교육은 성공의 다른 말이다. 미쳐갈수록 참교육은 요원해지고 있다.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4세 유아에게 외국어 학원 입학용 시험을 준비시킬지언정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착하게만 살지는 말라”고 뉴노멀의 처세를 요구한다. 사과하면 지는 것이라고, 뻔뻔해져야 한다고,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고위 인사들을 열거하며 조언한다. 다 보고 배운 것이다. 윗물이 흐린데 백년대계(百年大計)가 깨끗할 리 없다. 비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그릇을 냉정히 돌아보고, 과오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는 것, 이것이 서울대를 10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인 일이다.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판타지가 됐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실례(實例), 현실에서 어렵다면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라도 참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교육은 변해야 교육이다. 아무리 거세게 혼낸들, 모면하면 끝나는 잠깐의 청문회로 여기는 한 괜한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달 초 경북 안동의 한 학부모가 딸의 고등학교에 잠입해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치려다 적발됐다. 딸은 퇴학, 엄마는 구속. 참교육은 우연히 이뤄졌다. 시스템 오류(!)로 경보가 작동한 것이다. 학교 관계자는 “이 덕에 영원히 묻힐 뻔한 사건이 드러났다”고 했다. 하늘이 도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늘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