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들의 우경화는 올 상반기 진보 진영 내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주제 중 하나다. 서부지법 사태에서 본격적으로 촉발된 이 논쟁은 대선을 거치며 그 열기를 더했다. 출구 조사 결과가 진보 성향 지식인들과 지지층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까닭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을 상수로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과연 그가 득표율 과반으로 확실한 국정 운영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20대 이하 남성에서는 고작 24%가, 30대 남성도 60대 남성보다 10%포인트는 적은 37.9%만이 이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 득표를 자신하던 이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극우가 된” 2030 남성들을 버리고 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대선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이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30 남성 극우화의 논거는 정치적 성격을 띤다. 요컨대 정의감에 불타야 할 청년들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고 “내란 정당” 국민의힘과 “여성 혐오” 이준석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여의도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땐 “비상계엄을 옹호한다”는 비난이 덧씌워졌다. 오해는 풀고 가자. 2030 남성들이 주도했다고 알려진 서부지법 사태만 해도 20대 가담자는 소수였다. 30대 남성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건 사실이지만 40대 이상 중장년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과 미디어가 사람 수가 많은 30대에 20대를 붙여 “2030이 절반”임을 강조했다. 일부의 극단적 행동을 마치 청년 남성들의 보편적 양상인 양 취급한 것도 문제다.
2030 남성들은 우경화·극우화했다기보다 ‘진보에서 이탈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는 정견의 차이보다 이들을 대하는 진보 진영의 태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역사는 9년 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빌딩 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의 성격을 놓고 청년 남녀 간에는 ‘여성 혐오 범죄’라는 해석과 ‘조현병 환자의 묻지 마 살인’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갈등은 이윽고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냐 아니냐로 번졌다. 진보 진영은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부에선 공공기관장이 직접 성 인지 교육 자료에 등장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가정하곤 “화를 내기보다 자신은 가해자들과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려 노력하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2030 남성들의 반(反)진보 정서 아래에는 “예전엔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더니 이제는 극우로 매도한다”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2030 남성들은 딱히 보수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친윤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히 높고, 상법 개정 등 경제 현안에서도 여권과 방향성을 같이하는 게 적지 않다. 다만 특정 진영에 소속감이나 애착을 갖지 않는다는 데서 기성세대와 차이가 있다. 국방·외교·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잡한 태도를 보인다. 선거마다 국민의힘을 찍었다가, 민주당을 찍었다가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꽤 예민한 문제인 모양이다. 2022년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2030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하자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들을 ‘국민의힘이나 지지하는 찌질이(2찍남)’라고 조롱하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번에 불거진 극우화 논란은 그다음 버전쯤 되겠다. 이렇게 특정 유권자 집단을 잠재적 범죄자나 극우로 일반화한 전례가 또 있을까. 2030 남성들을 애물단지로 바라보는 시선들은 여전하다. 동네북도 이런 동네북이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