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북쪽의 나라는 참으로 강하고 자유롭도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지난 27일 캐나다에서 행한 ‘왕좌의 연설’(의회 개원 연설)을 이렇게 끝맺었다. ‘51번째 주’ 운운하는 미국 앞에서 캐나다의 자주성을 강조하기 위해 국가(國歌)의 유명한 구절 ‘강하고 자유로운 진정한 북쪽 나라(the true north strong and free)’를 인용했다. 여기엔 강인한 북국(北國) 사람들의 국가적 자부심이 담겨 있으니 연설의 갈무리로는 그만이었을 것이다.
가끔 여러 나라의 국가를 찾아 듣는다. 노래에 담긴 각국 역사와 특유의 정서를 살펴보는 일이 흥미롭다. 분단을 극복한 독일 국가는 ‘통일과 정의와 자유’로 시작하고, 영국과의 전쟁 중에 가사가 쓰인 미국 국가는 자유와 용기를 강조하며 끝난다. 오세아니아 나라들의 국가엔 원주민과 이주민의 융화라는 이상이 드러난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어(語)와 영어 가사를 연이어 부르고, 호주는 ‘우리는 젊고(young) 자유로우니’라는 가사를 2021년에 ‘우리는 하나 되고(one) 자유로우니’로 고쳤다. ‘젊다’는 표현이 유럽인 이주 이전의 역사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개정이다.
요즘은 영국 국가 ‘신이여 국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아카펠라 그룹 킹스싱어스가 찰스 3세 즉위에 맞춰 ‘여왕(queen)’을 ‘왕(king)’으로 바꿔 부른 1분 27초짜리 곡이다. 대관식이나 월드컵 축구 경기장에서 연주된 버전처럼 웅장하진 않아도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들리는 이 무반주 중창을 좋아한다.
특히 곱씹게 되는 가사는 ‘그가 우리의 법을 지키게 하시고(may he defend our laws)’라는 대목이다. 신에게 바치는 기도의 형식을 빌려 군주로서 국법을 수호할 책임이 국왕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작사·작곡자 미상의 이 곡은 오랜 세월 구전돼 왔다. 영국 왕실에 따르면 현재의 가사는 반란군이 조지 2세의 군대를 격파했던 1745년 런던에서 연주된 것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명예혁명(1688)을 거쳐 전제 왕정이 저물고 입헌군주제로 이행하던 시기다. 군주제를 부정하지 않고 여전히 국왕을 찬미하면서도 법치주의라는 국가 운영 원리를 천명한 셈이다.
여섯 성부(聲部)가 빚어내는 화음은 더없이 정갈한데 들을 때마다 우리의 현주소가 생각나 씁쓸해진다. 한국 대통령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 선서를 한다.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법의 엄정한 집행을 보장하는 일, 조문(條文)의 바탕을 이루는 사회적 합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국가 원수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법치의 확립을 내세우고 그에 걸맞은 행보를 실제로 보여준 인물이 있었는지 돌이켜봐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새 대통령 선출을 사흘 앞둔 지금도 들려오는 것은 독재, 내란, 응징, 심판처럼 섬뜩한 언어뿐이다. 진영 대결만 남은 선거판 어디에서도 법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당연히 여길 만큼 우리가 성숙했기 때문인지, 이제라도 바로 세우기엔 이미 우리가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어느새 법은 정치적 편의에 따라 만들고, 고치고,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돼버린 듯 보인다. 언젠가 애국가 가사를 개정한다면 ‘법의 지배’야말로 꼭 담아야 할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애국가를 고친다니 신성모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국가의 노랫말을 개정한 나라가 적지 않다.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