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입에 물 한 모금조차 대지 않고 꼬박 66일을 굶었다. 71㎏이었던 체중은 39㎏까지 오그라들었다. 영국 지배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였던 아일랜드 지하 투쟁 조직 IRA의 일원이었던 바비 샌즈(1954~1981) 얘기다. 샌즈는 1981년 3월 테러 혐의로 체포돼 14년형을 선고받자 “나를 테러범이 아닌 정치범으로 인정해달라”면서 단식을 시작했고 끝내 감옥에서 숨졌다. 매년 5월이면 아일랜드와 영국 곳곳에선 샌즈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그에게 동의했던 이도, 그를 반대했던 이도, 샌즈의 죽음 앞에선 같은 말을 한다. “그의 절절한 단식은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단식은 말 그대로 곡기를 끊는 행위다. 의학적으론 하루 200㎉도 안 되게 극단적으로 영양 섭취를 제한하는 것을 단식이라 부른다. 생물학적 본능과 욕구에 맞서 버텨내는 일이다. 그래서 단식은 종종 수행으로, 때론 극한의 저항으로 읽힌다.
그 유명한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에 있다는 조각상 ‘단식하는 부처’의 사진을 볼 때면 숨이 멎곤 한다.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 있는 샤키야족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지만 29세에 홀연 출가해 고행을 시작했다. 수행을 위해 음식을 줄이다 못해 나중엔 하루에 죽 한 방울만 먹었다. 조각상은 그렇게 극도로 말라 핏줄까지 튀어나온 인간 싯다르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가톨릭에선 예수가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했다 해서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을 사순절(四旬節)이라고 부르며 금식을 권한다. 기독교 신자들도 이 기간 금식 기도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인에게도 ‘역사를 바꾼 단식’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였던 1983년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며 가택 연금 상태에서 23일간 벌였던 농성이다. 그해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단식하는 동안 그는 나날이 야위어갔고,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언론 탄압에도 이를 보도하는 신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단식투쟁은 분열된 야권을 각성시켰고 훗날의 직선제 개헌을 닦는 사건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90년 10월, 13일 동안 단식한 끝에 지방자치제 도입을 관철할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사투와 동의어였던 단식은 그러나 이후 상한 음식처럼 변질돼 왔다. 뜬금없는 단식투쟁이 툭하면 이어졌다. 현재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당대표이던 2023년 8월 31일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국민 항쟁’이란 제목도 붙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 일본 핵 오염수 투기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검찰 출석 일정을 조율하던 도중 시작한 단식이란 사실만 더 주목받았다. 24일이나 단식했지만,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만 단식 장소를 공개하고 낮엔 멀쩡히 당무를 보는 모습을 보여 “출퇴근 단식” “방탄 단식” “라마단” 소리를 들었다.
지난 7일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단식을 시작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신이 이끄는 정당의 대선 후보를 상대로 그 당 지도부가 벌이는 단식이다.
“피아 구분 없는 단식투쟁” “간헐적 단식” 비난에도 권 원내대표는 맨발로 앉아 책 ‘히틀러의 법률가들’을 펼치는 킹 받는(짜증나고 약 오르는) 사진을 연출했다. 또다시 시작된 단식쇼다. 이들에게 실제로 목숨이 위험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을 돌려주고 싶다.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