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이 무슨 불경스러운 망발인가. 공휴일이 무섭다니.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듬해 달력을 미리 체크해 횟수를 비교할 정도로, 누구보다 빨간 날을 사랑했다. 걱정이 많아져서 그럴 것이다. 학교와 유치원이 쉬고, 병원도 문을 닫는다. 뭘 해도 할증이 붙는다. 어디 놀러 갈 수라도 있으면 다행, 한 푼이 아쉬운 처지가 되면 폐관수련해야 한다. 듣자 하니 다른 집도 사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차라리 일하고 싶다는 목소리에는 어떤 비애가 담겨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가계빚이 전달보다 5조원 늘었다.

“아니, 진짜 이번 5월 뭐냐고요. 달력 보다가 멘털 나갔어요.”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이런 한탄이 넘친다. 오피스 밀집 상권의 경우, 공휴일은 공동화(空洞化)를 의미하는 까닭이다. 휴일 수당까지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근로자의날과 주말 사이에 낀 5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이 무산되자, 일각에서는 안도의 환호까지 나왔다. “소를 키우자. 뭔 맨날 놀 생각만….” 다만 5월 6일 대체공휴일이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겹쳤기 때문이다. “10월도 걱정이네요.” 개천절과 추석, 한글날이 붙어있다.

공휴일은 대개 국가의 경사를 기린다. 그러나 광복절 가가호호 게양된 태극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개천절 단군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가슴 웅장해지는 한국인 역시 웅녀(熊女)처럼 자취를 감춘 게 현실. 지난 3·1절 연휴는 대체공휴일을 합쳐 사흘이었다. 정작 재미는 일본이 봤다. 현해탄을 건넌 항공기 승객이 23만명이었다. 작년보다 10% 늘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서둘러 한국을 뜬다. 내수 진작 효과가 미미한 이유다. 장장 6일이었던 지난 설 연휴도 마찬가지였다. 1월 출국자 수가 역대 최대(297만)였다.

일러스트=챗GPT

공휴일을 줄여 애국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독일경제연구소는 공휴일이 하루 줄면 국내총생산 규모가 86억유로(약 14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근무일이 하루 늘면 연간 GDP가 최대 0.2% 증가한다”는 계산. 2년 연속 경제 역(逆)성장으로 고조된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우리는 거대한 인구학적 문제에 직면했다. 이제는 더 적은 노동 대신 더 많은 노동을 논의해야 한다.” 독일에 공휴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주(州)에 따라 10~11일 수준으로, 주변국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보다 적다. 참고로 한국은 올해 20일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더 거대한 인구학적 문제는 대한민국에 있다. 그러나 ‘더 적은 노동’을 향해 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직장인 정책 발표문’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성공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평균 노동 시간을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측은 “근로 시간을 줄이면서 급여는 유지하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 비판하면서도 “현실적인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과연 2.5일을 온전히 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휴(休)가 한숨의 의성어가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너무 오랜 세월 과로의 민족으로 살아왔다. 다만 지금 끓어오르는 민심의 기저에는 휴일이 더는 휴일이 아니라는 신음이 깔려 있다. 벌이 없이, 별수 없이 쉬는 날은 벌 서는 심경일 수밖에 없기에. 나라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구멍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 30대 가장이 배달 오토바이를 몰다 빠져 사망했다. 투잡을 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