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웹드라마 ‘좋좋소(좋소 좋소 중소기업)’는 극사실주의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까닭에서다. 사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연봉 책정, 컵라면과 커피믹스 비치가 전부인 사내 복지는 청년들에게 지탄받는 중소기업의 전형이다. 직원들은 목적도 불분명한 야근을 밥 먹듯 하는데 임원들은 회사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대기업 인턴의 이야기를 그린 ‘미생’이 드라마라면 ‘좋좋소’는 다큐멘터리”라고 열광했다.
풍자의 대상이 될 만큼 열악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좋좋소’ 주인공 조충범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탈출을 꿈꾸는 이들은 이내 추노(推奴) 당하거나 자발적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대기업‧공기업 같이 번듯한 회사들은 너무 높은 곳에 있고, 다른 중소기업이라고 해봐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참다 참다 현실이 버거울 땐 방법이 하나뿐이다.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난 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배경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그냥 쉰’ 청년(25~34세)은 42만2000명에 달했다. 1년 전 33만6000명에 비해 무려 8만6000명 늘어난 수치다. 그냥 쉬었다는 건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구직 활동을 안 하니 실업자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이런 경향은 청년층에서 두드러졌다. 중년이나 노년층에서는 ‘쉬었음’ 인구 비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유독 청년층에서만 올 들어 이 인구가 급증했다.
한심하다고 손가락질 마시라. 이들은 마냥 논 사람들이 아니다. 한은은 “‘쉬었음’ 증가는 대부분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층에서 나타났다”며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쉬는 게 아니라, 취업을 경험한 이후 더 이상 구직을 하지 않고 ‘쉬었음’으로 이탈한 사례가 늘어났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 대면 서비스업에 근무하던 이들이었다. 요약하자면 한때 일을 하긴 했으나 열악한 일자리에 실망해 그만둔 뒤 그냥 쉬는 걸 택했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은 현실을 잘 모르는 이야기다. 이미 많은 청년이 눈높이를 낮출 대로 낮췄다. 한때 배달 라이더 수가 급증했던 게 좋은 사례다. 자기 학력보다 낮은 학력이 요구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하향 취업률도 추세적으로 상승 중이다. 최근에는 20%를 상회하고 있다. 쥐꼬리 같은 월급이 가져다주는 삶의 팍팍함은 부차적인 문제다. 핵심은 어떤 일자리에서는 자기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청년 세대에서 종신 고용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이직을 통해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당장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개 그런 일자리는 성장의 발판이 되지 못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임원들 뒤치다꺼리나 하다 보면 직업적 역량을 기른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첫 직장의 수준과 거기서 받는 연봉이 다음 직장에서의 그것들을 결정하는 풍토는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결정을 가로막는다. 중소기업에서 푼돈 받으며 시간 허비할 바엔 그냥 쉬는 게 낫다는 결정들이 모여 ‘쉬었음’ 인구의 증가로 나타났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이직을 통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도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직된 노동시장이 그런 성장을 가로막는다. 한번 마이너리거는 영원한 마이너리거로 남는다. 메이저리거로 올라설 수 없다면 차라리 경기장을 떠나겠다는 청년들, 그들의 존재는 승급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패자부활전이 사라진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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