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하고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은 일찍이 자리 잡고 앞으로 달려가던 그 시기, 정치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별다른 성과도 없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빌빌대던 현실보다 괴로운 건 불확실한 미래였다. 한창 일하고 경험 쌓아야 할 나이에 기업에서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을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나 매일같이 고민했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가 다르다는 말은 당사자에겐 위안이 되지 못한다. 꿋꿋이 제 갈 길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해도 어느새 상실감과 박탈감이 다가와 굳은 결의를 흩트려놓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가장 강하게 추동한 공간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마침 인스타그램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며 많은 지인이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던 때였다. 소통을 위해 시작하긴 했지만 인스타그램을 보는 건 썩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몇 장의 사진으로 구성되는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함과 부유함이 넘쳐 흘렀다. 그 빛나는 장면들만큼 내 너절한 마음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도 짙어졌다. 우울함이 밀려올 때면 괜히 잘나가는 친구들 ‘팔로우’를 끊기도 하고, 계정을 지웠다가 새로 만들기도 했다.
소셜미디어가 우울증을 심화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일상의 하이라이트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한다. 그런데 거기에 더러 과시욕과 허영심 혹은 경쟁 심리가 뒤섞이며 사회적 비교를 조장한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한층 더 커진다.
소셜미디어 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애플리케이션 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30대 이하 세대가 제일 많이, 오래 쓰는 소셜 미디어가 인스타그램이다. 10대와 20대는 모든 앱을 통틀어도 유튜브 다음으로 인스타그램을 가장 오래 사용한다. 이들은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면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인스타그램 메시지 서비스(DM)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우리나라에선 201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다. 공교롭게도 청년 세대와 관련된 부정적인 지표 여럿이 인스타그램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6년경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2015년까지 1.2명 언저리에서 오르내리던 합계출산율도 급전직하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2018년 1명 선이 무너졌다. 그즈음부터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도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6월 “호텔 스위트룸에서 명품으로 프러포즈하고 이를 소셜 미디어에 올려 자랑하는” 한국의 값비싼 청혼 문화가 결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누군가의 사치와 과시가 다른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하찮게 만드는 데에 인스타그램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을 심화하는 등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게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부모가 자녀의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활발해지는 추세다. 그런데 그 초점은 대부분 청소년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성인은 괜찮은가? 악화하는 청년 세대의 정신 건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도 소셜미디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성인이라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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