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핸드볼이 강호 독일을 만나 14-18로 뒤지다가 23-22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선수들은 열광하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다 같이 펄쩍펄쩍 뛰었다. 이 경기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단체 구기 종목이 거둔 단 한 번의 승리로 남았다. 여자 핸드볼이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유일한 한국 단체 구기 종목이고, 이후 4패를 더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 핸드볼팀 중 한국은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순위가 22위로 가장 낮았다.
150명이 채 안 되는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13개 등 역대 최고 수준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 예상을 뛰어넘는 메달 행진이 이어졌고 놀라움과 감동이 계속됐지만, 한편으로는 한구석이 내내 허전했다. 마치 올림픽을 다 보지도 않았는데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한국 대표팀의 단체 구기 종목 경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야구는 이번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농구와 배구, 축구는 남녀 모두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남녀 하키와 남자 핸드볼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핸드볼만이 올림픽 무대를 밟았으나 조별리그에서 멈춰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동안 한국 단체 구기 종목이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메달권에서 멀어진다는 우려가 컸는데, 이번 올림픽엔 당황스럽게도 아예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다시피 한 것이다.
펜싱, 사격, 양궁, 유도 등 한국 선수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치른 단체전은 대개 팀원 각자가 개인 경기를 펼쳐 성적을 모두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여러 명이 함께 경기하는 형식은 선수 두 명이 한 조로 구성되는 탁구와 배드민턴 복식 정도였다. 단체전에 나서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선수들을 보니, 더 나아가 다섯 명에서 열 명 넘는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태극마크를 달고 다 함께 뛰는 단체 구기 종목 경기가 더욱 간절해졌다. 예컨대 김연경의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같은 것이다.
도쿄 올림픽 당시 강력한 김연경 리더십에 단단한 조직력을 무기로 찰떡같이 뭉친 여자 배구 대표팀은 메달은 못 땄어도 투혼을 불사르며 ‘4강 신화’를 이뤘다는 찬사를 받지 않았나. 공을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과정, 갈등도 빚고 충돌도 하고 때론 무너지다가도 숱한 변수를 극복하며 힘을 합쳐 위기를 넘는 스토리, 지친 동료 어깨를 두드려주고 실수한 동료도 안아 일으키는 위로와 포용, 여럿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결과가 승리든 패배든 그리워졌다. 팀워크의 가치를 선명하게 발견할 기회를 이번 올림픽에선 아쉽게도 절반쯤 놓친 셈이었다.
파리에서 스무 살 안팎 새로운 세대는 자유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마음껏 펼쳤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개인 역량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한껏 발휘했다. 한국 단체 구기 종목이 재기해 올림픽 무대를 다시 밟는다면, 이 세대의 뛰어난 역량이 한데 모여 저마다 제 몫을 하면서, 때론 팀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좌충우돌 시행착오 끝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가슴 뛰는 장면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견고한 팀 하나를 완성하는 일은 탁월한 선수 한 명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다. 새로운 세대 특성에 맞는 접근법과 훈련법은 물론, 비전과 체계를 갖춘 치밀하고 섬세한 행정 지원이 필수다. 4년 뒤 LA 올림픽에는 야구·소프트볼이 돌아오고, 단체 구기 종목인 크리켓, 플래그 풋볼, 라크로스가 채택된다. 총, 활, 검으로 세계를 제패한 한국이 팀 플레이에도 강한 나라라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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