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는 이달에만 대학 축제 17곳에 섭외됐다. 본인이 소셜미디어에 직접 밝혀놨다. 서울부터 인천·천안·군산·안동까지 팔도를 훑는다. 5월마다 전국 대학에서 ‘대동제’ 등의 이름으로 대동소이한 축제가 우후죽순 열린다. 축제라고는 하나 핵심은 기성 가수들 초청 행사이고, 여타 공연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대학 캠퍼스에서 열리는 만큼 굳이 교육적 가치를 하나 찾자면,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한다는 산교육의 장(場)이라는 점이다. 유명 가수는 섭외 비용이 4000만~5000만원 수준이라 한다.

이맘때 대학 서열은 연예인 이름 값에 좌우된다. 논문 피인용 횟수 경쟁하듯, 잘나가는 가수를 몇이나 축제에 불렀는지가 그해 학교 평판에도 영향을 끼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립 부산대는 올해 축제 예산을 작년의 두 배 수준인 3억305만원으로 책정했다. 행사 용역 제안서에 ‘국내 정상급 가수 3팀, 최정상급 가수 3팀 이상’ 섭외를 조건으로 못 박아 놨다. 총장이 공언했다고 한다. 다만 한 학생은 “한 번 보고 마는 가수에 ‘영끌’하지 말고 식권이나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 전환은 필요하다. 세계적 석학을 모셔다 노래 한 곡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왕이면 인기 가수를 부르는 게 편리한 선택지이기는 하다. 이런 식으로 대학 축제의 주객(主客)은 전도돼 왔다. 한양대 총학생회가 지난해 밝힌 바, 지출액 중 ‘아티스트 섭외비’가 49.75%, ‘무대 설치 및 진행비’가 25.31%였다. 축제 예산 75%가 아티스트, 그러니까 연예인 공연에 투입된 것이다. 과연 K팝의 나라. 돈은 교비·학생회비·후원금 등으로 마련한다. 재원은 줄고 물가는 뛴다. 올해 4년제 대학 26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등록금 동결 정책이 시행된 지 12년 만에 최대 규모다.

며칠 전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교 축제 공연장 위로 휘황찬란한 폭죽이 터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그래도 이 정도 낭만은 괜찮지 않을까? 반문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뿐이다. 서울 바깥에서는 여전히 연예인 구경이 힘들다. 모든 유희가 창의적일 수는 없으며, ‘떼창’으로 유명인과 한때를 공유하는 봄밤의 추억도 충분히 소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가수 싸이가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며 한 달 만에 수억원을 가져갈 때, 말춤을 따라 추느라 허기진 몸으로 다음 날 1000원짜리 아침밥을 먹으러 학생회관에 줄을 설 학생들을 떠올리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최근 7개 대학 축제에 섭외된 걸그룹 뉴진스처럼 “수익금 기부”를 약속한 경우도 생겨났으나 극히 드물다.

일부는 축제를 포기한다. 대신 공연장에 입장하려는 외부인에게 돈을 받고 학생증을 양도한다. 소셜미디어만 검색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5만~10만원 수준에 거래된다. 지금 대학 학생증의 값어치는 그 정도다. 축제 초청 명단에는 아이돌 가수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이들 멤버 상당수는 미성년자다. 아직 주민등록증도 안나온 연소자에게 열광하며 목에 핏대를 올리는 대학생(大學生)들이 조금 안타까워 보일 때도 있다. 분명 너무 학업에 지쳐서 그럴 것이다.

대학 축제 시즌마다 소환되는 명언이 있다. 수 년 전 축제 사회자로 온 개그맨 장동민이 단상에서 외쳤다. 화려한 폭죽이 허공으로 흩어지던 찰나였다. “여러분, 하늘에서 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서 낸 등록금이 그냥 터지고 있습니다.” 취업 후에도 학자금을 못 갚은 대학 졸업자가 지난해 8만명을 넘어섰다. 체납액이 처음 900억원을 넘겼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이월된 빚은 유령처럼 쫓아다닌다. “소리 질러!”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