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피하고자 먼저 밝혀둔다. 이 글은 연초 줄서기 표지판이 불러온 서울 명동 입구 버스 정류장의 퇴근길 대혼란을 되풀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면서 그 혼란을 직접 겪었다. 광화문에서 버스 타고 서울역에서 잠들었는데 40분 뒤에 깨어보니 아직 명동이었던 날은 황당했고, 작전을 바꿔 명동에서 버스를 기다린 날 스마트폰엔 이미 도착했다고 나오는 버스가 ‘정위치’에 서기까지 20분 넘게 기다려야 했을 땐 분통이 터졌다.
오세훈 시장이 사과했을 때 많은 매체가 탁상행정에 맞선 시민들의 승리처럼 보도했다. 왜 그런 표지판이 등장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 전까지 정류장에서는 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타자가 공을 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낙하 지점을 향해 달리는 외야수처럼, 사람들은 먼저 타기 위해 미처 서지도 않은 버스를 따라 달렸다.
한바탕 줄서기 소동을 겪고 난 지금도 그 풍경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부 노선은 ‘대란’ 이전부터 서는 자리가 고정돼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정류장에선 표지판이 없어도 승객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선다. 문제는 여러 노선이 겹치는 정류장에 정차 위치가 고정돼 있지 않은 버스가 들어설 때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든다. 차도에 내려서거나 대통령 경호원처럼 버스 차체에 바짝 붙어 뛰기도 한다. 전에는 그 경쟁의 성패에 따라 앉아서 가느냐 서서 가느냐가 갈렸다. 광역버스 입석이 금지된 지금은 얼마나 과감하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타느냐 못 타느냐가 갈린다. 누군가는 한두 명 차이로 출퇴근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것이다. 노약자나 임신부 같은 교통 약자일수록 불리할 것이다.
지난주 서울시는 문제의 명동 입구 주변에 정류장을 추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장기적으로 노선을 조정하고 다른 교통수단을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통량을 분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줄서기 표지판은 실패했어도 먼저 온 사람이 먼저 타는 질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좋은 의도가 나쁜 정책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타당한 취지까지 없던 일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한국인의 질서 의식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고 한다. 번호표나 각종 예약 앱을 비롯해 줄서기를 대신하는 수단이 다양해졌고, 맛집과 한정 판매에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이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가 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줄서기라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장면을 지금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러 갈래로 줄이 생기는 화장실에서 나는 역시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진리를 배운다. 마라톤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대회가 끝난 뒤 온라인에서 일부 ‘무개념’ 크루(동호회)를 성토하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기록 전광판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들 다리 아픈 걸 참고 기다리는데, 한 명이 줄을 섰다가 차례가 가까워지니 다른 회원들이 여남은 명씩 슬금슬금 모여들더라는 것이다. 경적 외에는 사실상 항의하거나 제대로 줄을 서라고 요구할 방법조차 없는 도로에선 끼어들기가 횡행한다. 버스 정류장은 한 사례일 뿐이다.
줄서기는 조금 먼저 가느냐 천천히 가느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는 믿음,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는 합의 문제다. 줄서기를 정착시키는 일은 룰에 대한 신뢰라는 공공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버스 대란을 계기로 삼는 것이 발전적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이 추위에 떨며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한낱 해프닝으로 넘기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허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