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여자 골프 기사를 쓰다가 여러 번 놀랐다.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했을 때, 어느 LPGA 투어 대회 상위 10위 안에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었을 때, 5개 메이저 대회가 한국 선수 우승 없이 끝났을 때…. 방금 세계 랭킹을 확인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5위 안에 한국 선수가 아무도 없다! 일본에서 뛰는 35세 신지애가 15위인데, 한국 선수 중 셋째로 높다.

1998년 박세리의 LPGA 투어 데뷔 이후 한국 여자 골프를 지켜봐 온 이들에게 최근 국제 무대 성적은 낯설게 느껴진다. 한국은 역대 세계 랭킹 1위를 가장 많이 배출(5명)한 나라이며, 한국 선수가 LPGA 투어 15승을 합작한 시즌이 3번, 메이저 대회 3승 이상 거둔 시즌이 6번이었다. 2017년 US여자오픈에선 10위 이내 무려 8명이 한국 선수였고 1~4위를 싹쓸이했다. 물론 한국이 언제나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선수들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안다. 다만 튼튼하고 뿌리 깊어 보이던 한국 여자 골프의 기세가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달라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하고 영원한 1위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골프가 2016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스포츠로서 여자 골프의 국제적 위상과 인식도 달라졌다는 평가다. 한국과 한국계 선수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올려 구축한 성공 모델을 보고 태국,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 선수들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계 이민자들까지 뛰어들었다. 올 시즌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자들은 각각 베트남계 미국인, 필리핀·한국계 미국인, 태국계 프랑스인, 중국인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한국 유망주들은 코로나 사태 전후로 오히려 해외 진출을 망설이게 됐다. 인기가 워낙 커져 이제 국내 투어도 상금 두둑하고 스폰서가 많다. 해외에 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길고 힘겨운 동선과 많은 비용, 외로움까지 견디는 모험을 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프로로 자리 잡기까지 선수와 그 가족의 투자와 헌신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그래도 해외 투어 선배들은 “큰 무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라며 안타까워한다.

올 시즌 LPGA 투어 우승자 중 고진영과 김효주는 내년이면 29세, 양희영은 35세다. 다음 세대 출현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박인비가 2013년 메이저 3연속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을 때 나이가 25세였다. 국내 투어에만 머물면 세계 랭킹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적어 올림픽 출전도 쉽지 않다. 내년 LPGA 투어 출전권이 걸린 Q시리즈에는 현재 국내 투어 선수 4명이 나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국내 투어 소속 유일한 응시자였던 유해란은 올해 4년 만에 한국에 LPGA 신인상을 안겼다.

최근 Q시리즈 출국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올해 국내 투어 4승을 올린 노력파 임진희는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가 되고 싶어서 도전한다. 시기적으로 완벽할 때 가면 좋겠지만, 약간 모자랄 때가 가장 노력할 수 있을 때 아닐까.” 3년 만에 2부 투어에서 1부 투어 다승왕까지 올라선 그는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차근차근 해봐야죠”라고 했다.

한국 여자 골프가 오랜 세월 국민에게 주었던 감동은 줄기차게 문을 두드리며 압도적 실력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 과감하고 패기 넘치는 도전을 계속 보고 싶다. 큰 목표를 품고, 최고를 바라보고, 세상에 없던 길도 내줬으면 한다. 팬들 가슴에 꿈을 심어 또 하루 살아갈 힘을 주었으면 한다. 스포츠란 그런 것이고, 그런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