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급등에도 정부가 2주일 단위로 시중 판매가 상한선을 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을 동결했다. 최근 2주간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휘발유 1.6%, 경유 23.7%, 등유 11.5%씩 급등했지만 지난 10일 3차 고시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고 2주일 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앞선 2차 고시 때도 국제 가격 상승분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은 채 리터당 210원을 올리는 데 그쳤다. 국제 유가에 연동해야 할 판매가 결정 메커니즘이 무너진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인위적 가격 억제가 국민들에게 에너지 위기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이 격화되던 지난 3월 넷째 주 휘발유와 경유 판매량이 각각 25%, 16%씩 급증했다. 일부 사재기 수요가 섞여 있었겠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절약 추세와 달리 우리의 석유 소비가 늘어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란 전쟁 이후에도 자동차 통행량이 줄어든 정도 외에 일상에서 에너지 비상사태에 따른 절박함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정부가 최고가격제와 같은 가격 통제로 위기의 실체를 가리면서 소비자가 절약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 결과다.
인위적 가격 억제는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이번 추경에서 정유사 손실분 등을 메워주는 데 5조원을 배정했다. 화물차 기사 등 생계형 수요자뿐 아니라 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소비자에게 무차별적으로 기름값 보조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는 재정 집행의 공정성도 훼손한다. 산업부는 “현재 재원에 비춰 부담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고유가 장기화 가능성을 감안할 때 지나친 낙관론으로 보인다.
지금의 위기는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전쟁 이전으로의 완벽한 복귀는 없을 것”이라 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두 합친 것보다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밸브만 다시 열면 해결되던 과거와 달리 유전과 정제 시설 등 중동의 에너지 인프라 자체가 파괴되어 완전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마저 흔들리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절약 신호’다. 포퓰리즘적 가격 동결로 시장 기능을 훼손하지 말고,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되 취약 계층에 정교한 ‘핀셋 지원’으로 재정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