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제가 시행되면 연간 약 1만~1만5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헌재에 접수된 사건이 3092건이고, 본안 심리에 들어간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년에 달한다. 이 상황에서 1만건 이상 사건이 추가되면 헌재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국회를 통과한 재판소원법은 공포를 앞두고 있고, 공포 즉시 시행된다.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사건 처리 부담으로 헌재가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헌재는 사건 부담을 덜기 위해 원칙적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서만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연간 1만5000건이 추가로 헌재로 넘어갈 거라고 대법원은 예상했다. 재판소원 대상을 더 좁히지 않으면 헌재가 마비된다. 대법원도 매년 4만건의 사건이 몰리면서 사건 처리 지연, 처분 과정을 알 수 없는 이른바 심리 불속행 기각 남발로 사법부 불신을 부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헌재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 무엇보다 사건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한데 헌재는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판소원제로 사실상 4심제가 돼 재판 당사자들이 ‘소송 지옥’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대비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헌재가 재판소원을 받아들여 재판을 취소했는데 법원이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고 같은 판결을 다시 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 헌재는 이 경우 또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소송이 무한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인가. 그 피해는 다 국민이 입는다.
재판소원제는 사법 제도 근간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이 된 것은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하기 위한 정략적 목적으로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재판소원법을 지난달 갑자기 법사위 소위에 상정해 불과 1시간 논의 후 의결했고 같은 날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앞으로 부작용이 심각해도 민주당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헌재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실히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재판소원을 제기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헌재도 법원도 다 망가질 수 있다. 이 법이 폐기되거나 대폭 개정되기 전이라도 최대한 재판소원 적용 범위를 좁히고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