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기간 산업인 석유화학의 위기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기업 2만7000여 곳에 고용 인원 43만명, 한국 5대 수출 품목인 석유화학의 대표기업 여천 NCC가 오는 21일까지 3100억원을 갚지 못하면 부도가 유력하다고 한다. 5년 전만 해도 매출 5조원 이상에 1조원 넘는 흑자를 내던 기업이 최근 3년 연속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3월 이 회사의 주주인 한화와 DL(옛 대림)측이 각각 1000억원씩 추가 출자를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했다. 회사채 발행이나 대출마저 막힌 상태라고 한다. 이에 DL 측은 추가 출자에 난색을 표하면서 사실상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한국 석유화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18년만 해도 국내 전체 수출의 8.2%(약 500억달러)를 담당하며 세계 4위 생산국에 올랐던 한국 경제의 효자였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중국과 중동 공세에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천 NCC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 LG화학이 작년부터 줄줄이 일부 공장의 가동 중단에 돌입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GCG)은 현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 중 50%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생산 라인은 멈춰 서고, 투자 계획은 철회되며, 일자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내 석유화학은 나프타를 NCC(나프타 분해설비)에 돌려 화학제품의 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하면서 그 차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에틸렌을 기반으로 비닐, 필름, 전자기기, 마스크는 물론 기저귀, 병뚜껑까지 만든다. 그런데 이 사업 구조는 중국과 중동 등의 대규모 증설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작년 기준 글로벌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2억2900만t, 수요는 1억8800만t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개념이 희박한 중국은 물론 중동 기업조차 나프타 없이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석유화학 산업은 단순히 화학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수많은 전후방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제조업 전체와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위기가 국내 핵심 산업조차도 중국 공세 앞에서 구조적 한계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엔 석유화학뿐만 아니라 건설업, 이차전지 등에서도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런 산업 곳곳의 위기 경고음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수년 전부터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위기다. 그런데도 그 위기가 현실이 되는 시점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