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쌀값 안정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45만t의 쌀을 시장 격리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강원 홍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시장 격리용 쌀 적재 작업을 하는 장면. /연합뉴스

쌀 가격이 5% 이상 떨어지거나, 수요 대비 생산량이 3%를 넘어가면 정부가 무조건 쌀을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오늘 국회 상임위에서 단독 통과시키기로 했다. 지금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면 그 범위 안에서 정부가 재량으로 매입하도록 돼있는 것을 ‘의무 매입’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여만t이 사료용, 주정용으로 헐값 처분되고 있는데도 쌀 경작 지원에 세금을 더 퍼붓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농업이 발전하겠는가, 점점 더 곪아가겠나. 농민을 위한 것도, 농업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표를 위한 포퓰리즘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 20년 사이 40%나 줄었다. 그렇다면 쌀 농사도 당연히 40% 줄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농민들은 쌀 농사를 선호한다. 상대적으로 경작이 더 편한 데다 가격과 판매처도 사실상 보장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쌀은 매년 20만t 과잉 생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이후 3700만석(298만t)의 쌀을 매입해 보관하는 데 세금 5조원을 썼다. 이 쌀은 90% 이상 사료용, 주정용 등으로 헐값 처분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버리는 꼴이다. 양곡관리법이 개정돼 쌀 매입이 의무화되면 초과 생산량이 연 40만t으로 늘어나고, 여기에 매년 1조4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또 써야 한다.

민주당은 ‘식량 안보’를 이유로 들고 있다. 수십년 된 ‘식량 안보’ 논리가 아직도 현실적인지 되물어봐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끔 곡물 파동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의 식량 수입이 완전히 봉쇄된 경우는 없다. 심지어 북한도 식량은 마음대로 수입한다. 빵·면류·육류 소비가 급증하는 속에서 쌀만 주식(主食)이라는 논리에 집착하는 것도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쌀 외 다른 작물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결과 지난 12년 사이 주식용 쌀 재배 면적을 20%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신 사료용 쌀, 콩, 밀 등 다른 전략 작물 재배 면적을 60%가량 늘렸다. 우리는 2005년 이후 ‘쌀 직불제’와 ‘시장격리제’를 시행하면서 쌀 경작 면적 축소와 작물 다양화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 정부의 쌀 매입을 강제하는 민주당의 법 개정안은 쌀 경작 면적을 줄여가야 하는 농업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에도 역행한다.

오히려 중구난방인 농업 보조금을 구조 조정해야 한다. 현재 농업 보조금이 500여 개 항목에 지원되고 있고, 각종 세금 감면을 포함하면 연간 농업보조금이 10조원에 달한다. 농가 1가구당 97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보조금 지원 사업 중엔 축산 악취 개선(145억원),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건립(42억원), 농촌 집 고쳐주기(42억원), 식사문화 개선(11억원) 처럼 눈먼 돈을 뿌리는 사업이 수두룩하다. 귀농 귀촌 박람회 등 귀농 귀촌 관련 보조금만 8개 항목에 342억원에 이른다.

선심성 돈 뿌리기로 농업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는 없다. 농가 수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네덜란드는 농식품 수출액이 연간 1000억달러가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네덜란드는 농가 대형화, 산학협력, 시장 개방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경쟁력을 키웠다. 농업 보조금은 농지를 사들여 규모를 키우고, 첨단 설비를 도입하는 농민에게 집중 지원됐다. 한국의 농정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