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북한이 전술핵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연합뉴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친서를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손잡고 한반도 운명을 바꿀 확실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했고, 김정은은 “민족 대의를 위한 문 대통령의 고뇌와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서로 ‘평화’ ‘번영’ ‘대화’를 강조했다.

알다시피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 한반도 운명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폭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김정은은 실제 사용 가능성이 높은 전술핵 개발을 공언하더니 얼마 전 전술핵 탑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준비 중인 7차 핵실험도 전술핵 관련일 것이다. 이미 김여정은 ‘대남 핵 공격’을 직접 협박했다. 전술핵과 발사체를 모두 갖게 되면 “남조선군 전멸”이란 김여정 협박이 현실화할 수 있다. 올 들어 ICBM과 극초음속체를 포함한 미사일 도발만 13차례 했다.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북핵 폭주를 멈추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가 공개한 친서에는 ‘비핵화’나 ‘도발 중단’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진짜 평화를 가로막고 한국민을 위협하는 핵심 문제는 끝까지 침묵한 것이다. 2년 전 북이 방사포를 쐈을 때 청와대는 “강한 유감”이라며 “중단 촉구”를 했다. 그런데 이틀 뒤 김정은이 코로나 위로 친서를 보내고 방사포를 쏘자, 청와대는 유감 표명은 물론 중단 촉구조차 하지 않았다. 2019년 말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바로 그날 정부는 탈북 어민 2명을 북송하겠다고 북에 서면 통보했다. ‘김정은 초청 친서’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셈이다.

북은 2019년 비핵화 쇼가 끝난 뒤 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 ‘저능아’ 같은 막말을 퍼부었다.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서해 공무원 사살·소각까지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항의’ 친서를 보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공무원 피살 2주일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는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생명 존중’이란 말에 김정은이 놀랐을 것이다. 이번 친서에서 김정은은 “여지껏 노력을 바탕으로 정성을 쏟아 나간다면 남북관계 개선”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도 문 정부처럼 하라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