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의 권순일 전 대법관 방문 기록을 공개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요즘 해명해야 할 일이 많아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사람이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그가 얽힌 사건은 ‘천문학적 이익 독점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대장동 의혹만큼이나 큰 문제를 한국 사회에 던졌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와 대법원의 도덕성이 통째로 걸려 있다. 그런데 그는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변명 이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은 작년 7월 이재명 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당시 유무죄 의견이 5대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냈다. 그가 유죄 의견을 냈다면 이 지사는 대선 출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대한 판결을 전후로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김만배씨가 수차례 대법원을 방문했다. 김씨는 권 전 대법관을 면담할 목적이라고 했다. 당시 김씨의 부동산 개발회사 화천대유는 이 지사가 주도한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해 수천억원의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화천대유는 이 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문에 세 차례 언급된 상태였다. 권 전 대법관이 회사의 정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권 전 대법관은 그를 만났다. 이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대법원에서 이 지사가 무죄가 된 지 넉 달 만에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됐다. 세계 문명국 대법관 중에 이런 처신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김씨가 이 지사 무죄를 위해 권 전 대법관에게 로비를 했다고 보고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다. 결코 지나친 추측이라고 할 수 없다. 로비가 있었다면 돈이나 다음 정권에서의 자리가 거래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법원 역사에 전대미문의 일이다. 이 심각한 의문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해명해야 할 사람이 권 전 대법관이다. 그런데 그는 일주일째 침묵하고 있다. 그가 침묵하는 사이 김씨는 “대법원 구내 이발소를 간 것”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고 고문 변호사로 일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야당 의원이 ‘화천대유로부터 50억원을 약속받았다’고 하자 그에 대해서만 “사실무근”이라고 했을 뿐이다. 훨씬 심각한 혐의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권 전 대법관 말고도 이번 일에 얽혀 한국 법조계를 추락시킨 법률가는 여럿이다. 검찰총장, 법무차관, 특검, 검사장 출신도 포함돼 있다. 권 전 대법관은 뒤에 숨어 있다 여당 정권이 연장되면 대충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