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착공식을 한 전남 나주시 한전공대 부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공약으로 출발, 온갖 무리수 끝에 내년 대통령 선거 전 개교 예정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엊그제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이 열린 한전공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 표 얻겠다고 던진 공약이라는 것 말고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어이없는 사업이다. 취학 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5년 내 전국 대학의 4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서 정부가 공기업 팔을 비틀어 대학을 새로 짓겠다고 한다. 이미 전국 주요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다 있고, 대전 카이스트를 비롯해 포항·광주·대구·울산에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이나 있는데 또 에너지특성화 대학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 10년간 사업비 1조6000억원이 들어갈 한전공대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과학계·교육계·산업계의 논의가 전무한 가운데 지역 정치 논리의 산물로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나주시장 출신 민주당 의원이 아디디어를 내자 문재인 대선 후보가 전남 유세에서 공식화했다.

표에 목숨 거는 정치인들은 마구잡이로 지역 개발 공약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공약이 정책이 되고, 그 사업에 국민 혈세와 공기업 자금이 투입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제가 있다면 정책 당국자, 공기업 경영진은 이의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한전공대의 경우 관료나 공기업 경영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코드 맞추기에 바빴다.

한전 부채가 1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한전공대 프로젝트를 수용한 한전 최고경영자는 조환익 전 사장이다. 산업부 장관 욕심에 대통령에게 아부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 전 사장은 퇴임 후엔 “한전 재정이 어려운데 급하게 할 거 있느냐”면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후임자 김종갑 전 사장은 자리를 준 은혜를 갚는지 한전공대에 박차를 가했다. 한전 이사회도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 한전 이사회 의장은 문재인 선거 캠프에서 환경 분야 팀장 역할을 했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였다. 에너지, 전기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물 전문가 출신이다.

대학 구조 조정 책임을 진 교육부라도 나서야 했다. 그런데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예외적으로 산업부가 인가 및 감독권을 갖는 한전공대 설립 문제를 내내 모르는 체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학교 건물 준공 전 인가 신청, 입학 전형 계획 공표 시기 등 각종 편법 지원을 했다. 당시 위원장은 농촌 관광 전문가 송재호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였다.

무리한 정치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고 이의를 제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면서 한전공대는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한전 사외이사를 지낸 한 인사는 “한전공대는 지역 이기주의와 영혼도 국가관도 없는 관료, 경영자의 합작품”이라고 했다. 국민에 대한 심각한 배임이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들 뒤에 숨은 실무자들도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