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나포된 한국 유조선 석방 등을 협상할 외교부 대표단이 6일 출국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가 지난달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 가능성’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외교부는 관련 정보를 중동 5국 공관에 전문으로 알렸다. 내용도 “이란 정부나 준정부 기관, 정부 지원 단체가 호르무즈 해협을 출입하는 우리 유조선을 나포할 계획”으로 구체적이다. 이렇게 이란의 수상한 움직임을 한 달 전에 파악하고도 국민 억류를 막지 못한 것이다.

이번 나포 책임은 당연히 이란에 있다. 한국이 이란 원유 대금을 못 주는 건 이란 핵 개발에 따른 미국 제재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아니라 만만한 한국 배를 나포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나포 조짐을 알고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중동의 나포 첩보는 1년에도 몇 차례씩 들어온다”고 했다. 이란의 나포 첩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이란의 한국 비난은 통상적 수준이 아니었다. 2019년 이란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 은행에 묶인 원유 대금(70억달러) 해제를 요구한 데 이어 작년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도 보냈다. 주한 이란 대사는 우리 군함의 호르무즈 파병을 비판하며 “단교”까지 거론했다. 이란 외교부는 미국의 제재를 이행한 한국 정부를 “미국의 하인”이라고도 했다. 이란이 이렇게 막말을 쏟아낸다면 안보 당국은 마땅히 긴장하고 평소보다 대응 수위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뭘 했나.

지난 4년 가까이 우리 안보를 지배한 큰 흐름은 ‘설마’였다. ‘설마 무슨 일 있겠나' ‘설마 북한이 도발하겠나' 하는 ‘설마'병이 도져 주요 군 기지가 마구 뚫리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정부가 이란의 우리 선박 나포 첩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보도를 보며,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우는데도 지켜만 본 정부가 “설마 죽일 줄은 몰랐다”고 한 일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