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글로벌 금융시장에 사무라이 본드 열풍이 거셌다. 외국 정부·기업이 일본에서 엔화로 발행하는 이 채권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일본의 독특한 경제 상황이 있었다. 당시 일본 경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하며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무너진 상태였다. 하지만 달러는 넘쳐났다. 1968년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뒤 쌓아 놓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덕분이었다.
1995년엔 1달러당 엔화 환율이 79엔을 기록할 정도로 초(超)엔화 가치 강세였다. 지금 엔화 가치의 두 배였다. 엔고는 일본 수출 기업에 엄청난 타격이었고,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과 엔화 약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금리를 0%대로 낮추고, 사무라이 본드 발행에 필요한 신용등급 제한을 완화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브라질 등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들이 일본으로 몰려와 채권을 발행했다. 당시 엔화 채권이 국제 채권 시장의 17%(지금은 2%)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다.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고수익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되면서 엔화가 많이 풀리자 엔화 가치는 초강세에서 초약세로 급반전했다.
30년 전 일본 상황은 최근 원화 약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년 말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1430원대까지 밀린 원·달러 환율은 한 달도 안 돼 다시 148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국 대외 금융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대외 금융 자산은 1조달러를 넘어 세계 8위다.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 흑자는 1018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는 풍부한데 정작 환율을 결정하는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부족한 ‘풍요 속 빈곤’이 나타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채권국이자 경상수지 흑자국이던 일본 엔화 가치가 1995년 79엔에서 1998년 147엔으로 3년 만에 거의 반 토막 날 때와 비슷한 추세다.
정부는 서학 개미 탓을 한다. 해외 투자가 급증해 달러 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틀린 진단은 아니지만, 정부 책임을 모면하려는 면피 성격이 강하다. 홍수가 난 원인을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폭우가 쏟아져도 홍수 나지 않도록 둑을 튼튼히 쌓고 수로를 정비하는 것이 정부 역할 아닌가.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다. 원화 약세는 미국보다 낮은 성장률과 금리, 미국 증시의 장기 호황, 한국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 우려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이런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해외 투자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단기 처방만 쓰니 환율 대책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외환시장 전문가 사이에선 “노란봉투법 같은 반기업·친노조 정책만 철회해도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미봉책을 남발하면 시장의 내성만 키운다. 문재인 정부가 28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잡지 못한 것은 공급 부족이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다주택자에게 화살을 돌렸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이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격차를 벌려 놓듯 고환율도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수출 대기업과 달러 보유층은 혜택을 보지만, 서민들은 휘발유·밀가루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생필품 물가 상승 위험에 노출된다.
문 정부는 “공급 대책은 오래 걸린다”며 수요 억제책으로 일관하다 5년이란 긴 시간을 허송했다. 환율 대책이 문 정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단기 처방에 매몰되지 말고 구조 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정공법을 병행해야 한다. 아직 이 정부 임기는 4년 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