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통해 다가올 세상을 예견했다. ‘렉서스’는 기술과 혁신을 통한 세계화의 질주를, ‘올리브나무’는 자신의 뿌리와 낡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힘을 상징했다. 세계가 이 두 힘의 충돌을 겪을 것이란 그의 예상이 2025년 한국에선 비극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낡고 비대한 ‘올리브나무’가 질주하려는 ‘렉서스’의 엔진을 꺼뜨리는 것이다.
서울 명문대 공대를 나와 AI(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던 A씨는 최근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한국요? 규제 하나 풀려면 공무원, 국회, 이익단체 눈치 보느라 3년이 갑니다. 낯선 곳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게 낫죠.” 취업 준비를 멈추고 ‘그냥 쉬는’ 인구로 분류되는 B씨는 이렇게 항변한다. “중소기업에 들어서는 순간 연봉 3000만~4000만원이란 천장에 갇힙니다. 위로 옮겨갈 사다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알바가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한국이 직면한 아픈 데이터, ‘쉬는 청년’ 73만명과 연간 해외로 떠나는 2만2000명 청춘의 실체다. 개인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다. 구조적 절망이다. 수십 년째 업그레이드 안 된 한국이란 운영체제(OS)에서 한쪽은 시스템 접속 자체를 포기하고, 또 다른 쪽은 새로운 운영체제에 접속하러 떠나고 있다.
이 낡은 시스템을 고쳐야 할 개혁 시계가 멈춘 지 오래다. 노동 개혁을 보자. 1987년 체제 이후 40년 가까이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유(有)노조’라는 철옹성에 갇혀 있다. 호봉제라는 낡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과 하청 업체를 쥐어짜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더 견고해졌다. 현장에선 “노조 조끼 입은 노동 귀족”이란 자조가 터져 나오는데, 정치권은 표 계산하느라 기득권 노조의 눈치만 살핀다.
규제 개혁은 어떤가. 혁신적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를 기득권의 떼법으로 불법화시켜 장례식까지 치른 나라다. 원격 의료, 로톡 등 신산업마다 ‘올리브나무’들이 쳐놓은 덩굴로 고사(枯死) 위기다. AI 시대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만 ‘주 52시간’ 등 스스로 팔다리를 묶는 일에 매달린다.
교육 개혁은 더 참담하다. AI가 코딩은 물론 소설 쓰고 영화 만드는데, 학교는 20세기 주입식 교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AI 현장에선 “사람이 없다”고 비명을 질러도, 대학 정원은 학과 간 밥그릇 싸움과 수도권 규제에 묶여 꼼짝도 못 한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 산업화 이후의 ‘산업화 주역’을 자처하는 이들로 넘쳐 난다. 존중 받아 마땅한 역사지만, 그것이 청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 2030 세대는 묻는다. “내가 왜 이 낡아 빠진 시스템에 미래를 베팅해야 하는가?”
사상 최대의 노년층을 부양해야 할 ‘미래 청구서’는 확정됐는데, 정작 내가 받을 연금은 고갈 위기다.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를 딴 한국 인재 76%가 현지에 남는다고 한다. 이건 유학이 아니라 ‘엑소더스(탈출)’다.
AI와 플랫폼이 노동의 ‘판’을 뒤엎는 대전환의 시기에 인재들은 밖으로 떠나고, 안에선 포기하고 있다. 해법은 명징하다. 고통스럽더라도 노동·규제·교육 개혁에 당장 돌입해 ‘미래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아야 한다. 너무 뻔한 해법이라고? 이 뻔한 걸 수십 년간 외면하거나, 심지어 거꾸로 하면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게 우리다. 이 직무유기의 책임엔 좌우 차이가 크지 않다. 지금 마주한 위기의 본질은 이념 대립도 아니다. 수구 좌·우파가 손잡은 ‘올리브나무’가 진보하려는 ‘렉서스’를 짓누르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