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한때 1480원대까지 치솟으며 1998년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 보는 수치를 보여주었다. 트럼프 재선에 따른 강달러 현상까지 겹쳐 1500원 선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고환율은 원자재 가격을 올려 수출 기업 수익성을 갉아먹고, 기름값 등 수입 물가를 올려 민생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적정 환율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시장에선 한미 간 금리 차, 경상수지, 주요 통화 간 균형 등을 감안할 때 원화 가치가 10% 이상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환율 방어 총력전을 펼치다 한미 통화 스와프로 돌파구를 찾았던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는 적정 환율을 1250원 선 정도로 봤었다.
환율을 끌어내리려면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어야 하는데, 실탄이 넉넉지 못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 상승을 막느라 달러를 소진한 탓에 현재 외환보유액이 4156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2021년 10월(4692억달러) 대비 500억달러 이상 줄었다. 환율 방어에 달러를 더 허비했다간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달러 선이 무너질 판이다.
환율 수준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한 해 경상수지 흑자가 900억달러를 웃도는데도 환율이 계속 오르는 것은 달러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옛날엔 기업의 달러 수요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서학개미의 투자용 달러 수요가 환율 상승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 투자용 달러 매수 규모가 한 해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정부는 달러 수요를 누를 순 없으니, 달러 공급을 늘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로 궁리해낸 수단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자산 4850억달러 중 10%에 대해 환 헤지(hedge·위험 회피)를 하게 만든 것이다. 환 헤지 방법은 미래에 특정 환율로 달러를 파는 선물환 매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선물환을 매수하는 은행은 달러 과다 보유 위험을 피하고자 갖고 있는 달러 현물을 내다 팔게 된다. 즉 국민연금이 485억달러를 환 헤지하면, 그만큼의 달러 현물이 시장에 풀려 달러값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묘수로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해외 자산에 투자할 때 100% 환 오픈(환 헤지 0%) 전략을 취해왔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국내외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환 변동은 수익률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기금 덩치가 커지는 2030년대 초까지는 환 헤지 0%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투자 원리로 보면 해외 투자는 자산군을 다변화해 분산 투자하는 의미가 있는데, 환 헤지를 하면 해외 자산까지 원화 자산으로 바꾸는 셈이라 분산투자 효과가 반감된다. 또 대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안전 자산인 달러 가치가 올라 자산 가치 하락분을 상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환 헤지는 이런 조절 기능을 차단해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비싼 수수료까지 물면서 환 헤지에 나선 것은 외환보유액을 축내지 않고 달러 공급을 늘리려는 정부의 압박 때문이다. 상식 밖 계엄 선포가 환율 급등을 낳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 수익률을 저해하는 비상 수단까지 동원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계엄발 정치 불안이 지속되고, “국장 탈출은 지능순”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이런 카드로도 환율 상승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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