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 옥외 작업장에 신한울 원전 3·4호기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에 들어갈 부품들이 벌겋게 녹이 슨 채 쌓여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5년 11월 한국수력원자력의 승인을 받아 신한울 3·4호기 원자로 제작에 착수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작업이 올스톱됐었다./김동환 기자

1966년생 장성호씨는 군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18세 때였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 대학이 없는 거제를 떠나 1987년 창원의 한국중공업에 입사했다. 현 두산에너빌리티(두산중공업)다. 전문대학에 진학해 용접을 전공했고, 지금은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다.

흔히 용접의 꽃을 조선소라 하지만, 원전 용접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용접 대상의 두께가 원자로는 30㎝ 수준이다. 크랙(갈라진 틈새)이 생기면 안 되니, 용접 부위에 수분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120~150도에서 예열 후 용접한다. 불가마가 따로 없다. 한번 지은 원전이 40년, 아니 80년도 넘게 버티는 데는 ‘신의 경지’인 용접 기술 덕분이다. 전압, 전류, 속도의 3박자를 절묘하게 조합해야 한다. 그 노하우는 인공지능도 쉽게 못 배운다. 사람 몸도 근육이 뭉치면 문제가 생기듯 용접 내부에도 응어리진 곳이 있을까 봐 용접 후 595~610도에서 열처리를 해야 한다. 사후 검사도 치밀하다. 표면 결함은 기본이고 초음파 검사, 방사선 투과 시험 등을 ㎜ 단위로 한다. 사람 몸을 X-레이와 MRI로 검사하는 수준이다. 아래 보기, 수평 자세, 수직 자세, 위 보기 자세 등 20가지가 넘는 기술마다 별도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이런 기술을 죽어라 배운 장씨는 영광 원전 3, 4호기로 시작해 한빛 3, 4, 5, 6호기 등 국내 원전 17기, 중국 진산 3호기, 미국 VC 서머 2호기 등 해외 원전 11기까지 총 28기 원자로 용접에 땀을 바쳤다. 용접으로 국가명장 칭호도 받았다.

그런 그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이었다. 탈원전 후폭풍으로 동료 절반 이상이 그만두는 상황에서도 후배 용접공들을 다독이며 버텨, 지금 기술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역경을 버티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원자로 34대, 증기발생기 124대를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 공급했던 두산은 원전 핵심 기기를 일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공장이다. 그런 공장이 원전 공사를 다시 못 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으로 버티기에 돌입했었다. 한때 원자력 부문만 56개 팀, 1005명이었지만 2021년에는 49개 팀, 729명으로 30% 정도 쪼그라들었다. 초일류 기술진이 떨어져 나가는 건 생살이 찢기는 고통이다. 핵심 인력 지키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300명의 용접공 명단도 포함됐다. 일감이 30% 수준까지 줄어 할 일 없어진 용접공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기도 했다. 심지어 손맛을 잃을까 봐 모형 원자로까지 만들면서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했다. 그래도 180여 명이 떠났다.

탈원전은 한국 산업사에서 정치가 산업을 무너뜨린 최대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 참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발생한 손실만 22조9000억원에, 앞으로 날아올 청구서가 24조5000억원이다(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여기엔 장씨와 두산 같은 무너진 원전 생태계의 손실은 포함도 안 돼 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저지른 손실이 47조원을 넘는다니 믿기지 않는다. 선출된 권력이 정책 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란 국민이 낸 세금을 대신 쓰는 주체란 뜻이다. 그들이 세금 내는 기업과 국민을 돕지는 못할망정 폭력으로 망가뜨렸다면 최소한의 사과라도 있어야 한다. 그게 수습에 나설 용접공 같은 원전 전사(戰士)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다. 사과는 일본만 하는 게 아니다.